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R&D 혁신 토론회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The-K 서울호텔 거문고홀에서 개최한 ‘제3차 R&D 혁신 토론회’에서 최양희(왼쪽) 미래부 장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제공
소수 심사위원 돌아가며 연구개발 선정 상부상조
R&D 감사 한다고 하면 연구원 “너희가 뭘 알아”
유흥주점·노래방 다니며 512차례 법인카드 ‘펑펑’
감사원이 16일 공개한 ‘공공기관 연구·개발(R&D) 투자 관리실태’ 감사 결과는 고질적인 병폐들이 총망라된 ‘비리 백화점’을 방불케 했다. 연구소에 근무하지도 않는 ‘유령연구원’을 등록하고, 연구소 간에 서로 연구원들을 빌려주면서 연구비를 부풀리는 수법 등 R&D 업계의 대표적인 적폐가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문제는 이들에게 투입되는 연구·개발비 중 상당수는 ‘눈먼 돈’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연구분야 특성상 전문성을 내세워 정부 돈 수백억 원을 가로채고 이 중 일부는 개인 취미생활이나 유흥비 등으로 탕진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룸살롱 회의에 오디오 구입까지= 정부에서 한 해 집행하는 연구·개발 예산은 18조5000억 원에 달하지만 감시체계가 소홀한 틈을 타 세금계산서 허위 발행과 연구원 인건비 부당산정 등 유용 실태는 도를 넘어섰다. 소홀한 정부 감시 탓에 학계에선 연구비는 ‘눈먼 돈’이나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로 인식된다. 고가의 오디오 구입 외에도 최근 감사원이 검찰에 수사 의뢰한 건 중에는 대학교수 A 씨가 연구·개발비 1억여 원을 개인 펀드 통장에 유용한 사건도 있었다. 연구원과 임직원들이 3년간 512차례에 걸쳐 룸살롱 등 유흥주점 출입에 법인카드 1억여 원을 사용해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한국산업관리공단으로부터 지난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국고보조금 36억 원을 지원받은 뒤 발급받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회사 용도로 진공펌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 구매비로 사용하는 등 12억 원을 횡령한 중소기업 대표 B 씨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전문성 빙자해 “너희가 뭘 아느냐”= 연구·개발 선정부터 관리까지 돈을 주는 관료들은 전문성에 휘둘렸다. 연구·개발비 횡령은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도 꾸준히 적발될 만큼 과학계의 뿌리 깊은 폐단이다. 비리가 횡행한 이유는 전문 연구가들이 수행하는 연구과제를 외부기관이 들여다보기 힘든 탓이 크다. R&D 관련 감사에 참여했던 한 감사관은 “R&D 감사를 한다고 하면 연구원들이 ‘너희가 뭘 아느냐’란 반응을 보인다”며 “감사관들이 노하우를 쌓기 전까지는 연구가 실패인지 성공인지도 알기 힘들다”고 말했다.
◇악용되는 ‘성실 실패’= 공공기관 연구소들이 연구·개발 결과로 ‘성실 실패’란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성실 실패란 일정 기간 연구·개발이 진행됐지만 당초 계획했던 결과는 얻지 못한 것을 말한다. 결과로 보면 명백한 실패지만, 연구기간 동안 연구자들의 공로를 인정해 주는 것인데 이런 전례가 악용돼 결과에 관계없이 이후 공공기관 연구 입찰에 응할 수 있다. 이 감사관은 “전망이 확실하지 않은 연구·개발에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이를 포장해 향후 연구·개발비를 계속 타는 폐단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분야에 따라 연구·개발비 집행이 이뤄지는데, 소수의 심사위원들이 돌려막기 식으로 상대 연구·개발 선정에 도와주고 나중에 도움을 받는 관행까지 존재했다.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도 공공기관 책임연구원과 일선 대학교수들 사이에서 허위로 입찰에 나서기도 했다.
◇학생들 통장 뺏어 돈 가로채= 연구·개발비 횡령 수법으로는 책임연구원이 직원들의 통장을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북 전주의 한 대학교수인 C 씨는 2008년부터 7년 동안 정부에서 지원하는 60억 원 상당의 연구·개발 사업을 수주하면서, 인건비가 입금되는 학원생들의 통장을 직접 관리하며 인건비 13억여 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지난 8월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연구·개발 지원금 전용 유형으로는 납품기업과 공모하는 사례(38%)가 가장 많았으며 목적 외 사용(30%)과 현금 무단인출(22%), 허위증빙(10%)이 그 뒤를 이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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