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터스텔라’와 농업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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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공상 과학영화로는 기록적으로 누적 관객 10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둔 ‘인터스텔라’. 인류 멸망을 눈앞에 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우주과학을 동원한 상상력을 맘껏 발휘한 이 영화는 인류 멸망의 원인을 ‘식량 부족’에서 찾았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더이상 농사지을 수 없게 된 지구를 떠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의 흙을 찾아 떠나는데… 토성까지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최첨단 미래에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가치로 ‘구시대적(?) 농업’이 선택됐다는 게 아이러니다.

# 최근 방한했던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는 서울대 경영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경영학석사(MBA)가 무슨 필요가 있나. 당장 농대(農大)로 가라”고 말해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식량과 농경지 부족이 심해져 여러분이 은퇴할 때쯤엔 농업이 수익을 가장 많이 내는 유망한 사업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투자의 귀재’인 그가 “다음 생에는 미국 금융인보다 중국 농부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니, 새삼 미래 농업의 잠재성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한·중,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이어 농업 강국인 호주와의 FTA가 지난 12일부터 발효되면서 개방화 시대의 한국 농업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다른 한편에선 ‘농업의 가치’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노동집약·농지의존적 농업에서 벗어나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의 기술집약 산업,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식품산업, 그리고 세계와 경쟁하는 수출산업으로 농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액션플랜도 내놨다. 토마토·딸기 등 유망 수출품목의 경우 ICT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온실을 2017년까지 전체의 30%인 1만6000㏊ 수준으로 늘리고, 농식품 수출액은 2013년 57억 달러→2017년 100억 달러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중 FTA 타결로 중국산 농산물 수입에 대한 염려가 많지만 반대로 중국 식탁을 공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건강·안전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중국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중국 부유층은 한국산 고급 기능성 농산물·식품의 핵심 수요층이 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주어진 현실은 말처럼 그리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넓고도 높다. 우선 ‘농업은 오로지 농민만이 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텃세를 극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지난 2012년 말 동부그룹 계열 동부팜한농이 경기 화성시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첨단 유리온실 단지를 지었다가 농민단체의 반발로 3개월 만에 사업을 접은 건 돌이켜볼수록 안타깝다. 동부는 축구장 15개 크기인 이 온실단지에서 연간 5000t이 넘는 토마토를 생산해 일본·대만 등에 전량 수출하고 농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지만 “거대자본의 농업산업 진입 절대 반대”를 외치는 농민단체의 반발 앞에 뜻을 접어야 했다. 농업보조금을 둘러싼 극심한 모럴해저드도 한국 농업이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 등의 이슈가 터질 때마다 농업보조금 규모를 팽창시켜왔지만 어느새 보조금은 ‘눈먼 돈’이 됐고 농업 생산성은 계속 뒷걸음질이다. 농업에 쏟아붓고 있는 연간 6조 원 이상의 보조금이 한국 농업의 미래에 ‘자양분’이 아니라 ‘독(毒)’으로 작용하는 건 아닌지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 세계가 농업의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짐 로저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기술과 자본, 영토를 결합한 선진국 간 ‘농업전쟁’은 갈수록 불을 뿜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농업이 기존 1차 산업에서 2차(제조·가공), 3차(유통·서비스) 산업을 포괄하는 ‘6차 산업’으로 변모하면서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졌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한국 농업이 미래 성장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 결단이 필요하다. FTA 타결에 따른 피해업종 지원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농업은 지원하고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을 극복하는 일은 미래 농업혁신을 위한 첫걸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