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교수의 드라마 세상>욕망·생존본능이 도덕·상식 압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2014년이다.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물질적 욕망과 생존 본능이 도덕과 정의 그리고 양심과 상식을 압도해버린 한 해였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을 진리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세상은 점점 더 그악스러워져만 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 사고가 터지는 집안을 배경으로 물질만능주의 세태를 풍자한 KBS 2TV 주말연속극 ‘왕가네 식구들’의 웃어른 안계심(나문희) 여사가 걸핏하면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어!”라며 손사래를 치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도 그래서이리라.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했던 연인은 물론 부모 자식의 인연까지도 가차 없이 외면하는 파렴치하고 패륜적인 악행들이 세속적 성공을 빌미로 자행되는 상황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세상은 점점 더 이상한 곳으로 변해 갔고, 드라마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악행으로 시청자들을 기함시켰다. 부잣집 부부의 후원을 받기 위해 어머니를 버리고 고아 행세를 하면서 거짓말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MBC 주말연속극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은 그 어느 해보다 독하게 살아남아야 했던 2014년을 상징하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그녀를 향한 시청자의 비난과 욕설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물론 복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한 해였던 만큼 참회와 성찰을 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정도전의 철학과 사상을 통해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진짜 정치의 본질을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를 분명히 했던 KBS1 대하드라마 ‘정도전’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수탈과 착취를 일삼던 권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현실 정치를 환기시켰다.

그런가 하면 일상생활에 만연한 ‘갑을’ 세태에 경종을 울린 경우도 있었다. 절대적인 경제 권력에 기생하며 사는 동안 훼손됐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오혜원(김희애)의 고뇌를 밀도 있게 형상화한 JTBC 미니시리즈 ‘밀회’는 상류층의 허위의식과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tvN 금토드라마 ‘미생’ 또한 바둑이 인생의 전부였고, 그래서 프로 입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으나 끝내 최종 입단 실패와 함께 맨땅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진 비정규직 인턴사원 장그래(임시완)를 통해 비슷한 처지의 직장인뿐만 아니라, 갑의 횡포에 시달리는 수많은 을의 심금을 울리면서 화제가 됐다.

진실이 은폐되고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도덕과 정의 그리고 양심과 상식을 강조하다가는 세상 물정 모른다는 지청구를 듣기 쉽다. 낭만적 사랑을 판타지로맨스로 형상화한 SBS 드라마스페셜 ‘별에서 온 그대’(사진)에서조차 현실은 고달프고 잔인하게 그려졌다. 400여 년 전에 외계에서 날아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도민준(김수현)이 냉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천송이(전지현)에게 지청구를 듣는 것도 그래서였다.

판타지로맨스뿐만 아니라, 로맨틱코미디 장르에서조차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SBS 드라마스페셜 ‘괜찮아, 사랑이야’의 장재열(조인성)이나 지해수(공효진)처럼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아내야 할 현실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