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싸이는 더 이상 취해 있지 않을 겁니다

지난 주말 가수 싸이의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티켓이 팔린 싸이의 공연은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그는 여장(女裝)을 불사할 만큼 여전히 열정적이었고 입담은 발군이었으며 본공연을 마친 후 1시간에 걸친 ‘뒤풀이’ 앙코르 공연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을 때도 1만2000여 명이 내지르던 함성과 대규모 스피커가 내뿜는 사운드에 3시간 넘게 노출됐던 귀에서 ‘웅웅거림’이 떠나지 않을 정도였죠.

5회에 걸쳐 6만 명에게만 허락됐던 싸이의 콘서트를 봤다는 것보다 더 뿌듯한 건 ‘싸이의 고백’을 들었다는 겁니다. 싸이는 대한민국에서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에 가장 부합한 인물입니다. 2012년 발표한 ‘강남스타일’이 미국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고, 본토 힙합의 자존심인 스눕독과 ‘행오버’를 합작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2012년 이후 정신 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쫓기듯 승부하려 했다. 내년부터 ‘뻘짓’ 안 하고 열심히 음악하겠다.”

싸이는 2001년 데뷔 이후 월드컵송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정규 앨범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시류에 편승해 1, 2곡이 담긴 디지털 싱글을 발표해 치고 빠지는 ‘꼼수’를 부리지 않았죠. 그런 그가 ‘강남스타일’ 성공 이후 2년간 ‘젠틀맨’과 ‘행오버’, 단 두 곡만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성문을, 싸이는 2014년이 끝나기 전 그의 콘서트장을 찾은 진성 팬들에게 보낸 거죠.

“싸이가 ‘미생’을 보지 않았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세밑 대한민국을 강타한 ‘미생’에서 오 차장은 장그래에게 말했죠. “취해 있지 마라.” 단순히 과음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었을 겁니다. 좌절에 빠져 허우적대지도 말고, 승리에 도취해 있지도 말고, 무언가에 집착하지도 말라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죠.

그러고 보니 올 한 해 대한민국은 참 많이 취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초 외계인을 등장시킨 ‘별에서 온 그대’가 큰 성공을 거두자 판타지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고,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했을 때는 집단 우울증을 경험했습니다. 비뚤어진 갑을 관계는 1년 내내 곳곳에서 잡음을 내다 ‘땅콩 회항’ 사태로 극대화됐죠. 그러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필부(匹夫)를 내세운 ‘미생’을 보니 마치 붕 떠 있다가 다시 현실에 발을 디딘 기분입니다.

2014년의 기쁨과 슬픔, 추억과 아픔을 모두 뒤로 하고 다시 새해입니다. 시작은 항상 두렵죠. 불확실의 연속이니까요. 하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2015년은 또 다른 길을 열어줄 겁니다. 출발선상에 선 모든 이들에게 오 차장은 말할 겁니다. “버텨라! 그리고…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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