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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평 게재 일자 : 2015년 01월 06일(火)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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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 부산대 석좌교수, 前 국회의장

‘땅콩’이 ‘킹콩’만 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수습 과정에서라도 책임감과 진정성을 보였더라면 이렇게까지 파문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킹콩의 괴력만큼이나 그 파괴력 또한 엄청나 대한항공은 창업 이래 쌓아온 이미지에 먹칠하고 새 사업 추진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당사자는 구속됐다.

자식의 잘못은 어디까지가 부모의 책임이고 허물일까.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큰딸을 잘못 가르친 죄라며 아버지가 머리를 크게 숙이는 장면은 보는 이도 민망했다. 나이 마흔을 넘겼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식의 언행까지 아버지가 나서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걸까. 막내딸의 야릇한 문자 메시지까지 공개된 마당에 그 아버지의 심경은 또 어떠할까.

물론 몇몇 일탈 행위로 재벌가 전체를 매도해선 곤란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둘째 딸 민정 씨는 해군 소위로 임관한 재벌가 첫 여성이 됐다. 아버지를 감옥에 둔 딸로서 국가에 서운함을 가질 법도 하건만 그는 의연하게 호국의 길을 택했다. 아버지도 딸의 결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다.

시대에 따라 아버지상(像)도 변하는 걸까. 지난 연말에 본 영화 ‘국제시장’의 몇 장면과 대사 몇 마디가 가슴을 스친다. 눈보라 휘날리는 흥남부두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어린 덕수는 평생을 오로지 식구들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다. 남동생 등록금 때문에 독일 탄광에 다녀온 덕수가 여동생 시집보낼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베트남에 가겠다고 하자 아내 영자는 울먹인다. “왜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당신은 없는 거냐”고. 그러나 덕수의 생각은 이렇다. “그래도 그놈의 전쟁을, 독일 탄광을, 월남에서의 고생을 내가 겪었으니 망정이지 우리 새끼들이 겪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런 덕수지만 외롭고 서러울 땐 아버지 사진 액자를 붙잡고 하소연한다. “아부지예, 내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진짜 힘들었거든예….”

극장을 나오면서 보니 중장년층은 물론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눈시울도 다들 젖어 있었다. 이 영화가 젊은 세대를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또 눈물짓게 하는 건 그만큼 그들이 ‘국제시장’ 속 덕수, 그 모진 세월을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에 공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세대 간 단절을 이어줄 수 있는 작은 소통과 희망의 끈을 본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아버지였던 사람은 없다. 세상 모든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다. 아무리 강인해 보이는 아버지도 가끔은 한없이 약해지고 작아져서 누군가의 아들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김현승 시인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세상이 시끄러우면 /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건만 여전히 대접을 못 받고 산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큰소리 한번 못 친다. 특히 가정에서 그렇다. 잘된 것은 제가 잘나서고 잘못된 것은 모두 아버지 탓이다. 가부장으로서 권위는 사라진 지 옛날이고 책임만 남았다. 가르침이 없는 가정, 배울 것이 없는 집안이 돼버렸다.

지난해엔 유난히도 자식 때문에 고개 숙이고 가슴을 쳐야 했던 아버지가 많았다. 서울시장 후보도, 교육감 후보도, 경기도지사도, 어느 배우도 아들딸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자식 교육을 잘못한 탓이고 불찰이라며 사과해야 했다.

결국은 교육이다. 공교육은 이미 무너졌다 하고, 가정교육도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교육이 안 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하는 사회가 튼튼할 리 없는 것이다. 아버지 부재, 부성·부권 실종 시대다. 아버지 역할의 상당 부분은 아내에게 넘어가 버렸다. 시간적·정신적·육체적으로 아버지란 사람은 쫓기고 시달리고 피곤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주어야 한다. 24시간 매여 있고 묶여 있고 눈치 보는 아버지들이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못난 아버지와 잘난 자식이 밥상 앞에 함께 앉아야 한다. 그래야만 아버지가 ‘발견’되고 아버지가 살아난다. 가정교육은 그때 비로소 자리 잡을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자식 농사다. 새해엔 더 이상 자식으로 인해 고개 숙이고 가슴치고 눈물 훔치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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