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경제, 사회적 기업 1000개 시대>음성 동화책 ‘담뿍이’ 개발… 다문화 어린이 ‘한국어 친구’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해누리센터에 위치한 알로하아이디어스 사무실에서 직원이 동화책을 읽고 있다. 동화책 읽는 소리는 음성 책 기기인 ‘담뿍이’에 녹음돼 언제든 재생할 수 있다.

한국어 어려워하는 다문화 엄마
아이들에게 동화책도 못읽어줘
엄마·아이 모두 사회에서 소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튀는 외모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부분에서도 소외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진학률이 30%까지 떨어진다. 알로하아이디어스가 개발한 ‘담뿍이’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책과 친근해질 수 있다면 언어 장벽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해누리센터에서 만난 김지영(44) 알로하아이디어스 대표는 “어린 시절 엄마를 비롯한 가족이 읽어주는 동화책은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학교에 들어가서도 학습과 연결되는 부분”이라며 “다문화 가정 인구가 30만 명이나 되는 만큼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언어장벽을 없애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아동 교육 전문 기업인 ‘웅진씽크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회사 일로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다문화 가정 중에는 아이를 위한 동화책 한 권조차 없는 집이 많았다. 엄마가 한국어에 자신이 없다 보니 아이에게 책 읽어 주기를 겁내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이 때문에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은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어하게 된다. 김 대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흥부와 놀부가 뭔지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며 “극복하기 힘든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국어 때문에 엄마와 아이 모두 한국사회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위한 교육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김 대표는 2012년 회사를 나와 2013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창업 교육을 받는 한편 소비자 조사와 상품 기획을 하는 등 창업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하지만 창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런 찰나에 정몽구재단의 사회적기업가 창업 지원 오디션에 합격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알로하아이디어스는 재단으로부터 사업자금의 50%를 지원받아 제품 생산에 착수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개인 투자금도 많이 들어갔지만 재단의 지원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 단계의 사회적기업에는 이런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알로하아이디어스 설립 이후 1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김 대표와 3명의 직원은 담뿍이라는 음성 책을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책 한 권 모양의 기기에는 동화책 500권 분량의 음성이 저장된다. 언제 어디서나 아이들과 함께 있어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알로하아이디어스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작동이 ‘직관적’이고 쉬워야 한다는 점이다. 사용 방법이 복잡하면 기기를 갖고 있어도 사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엄마가 기기에 대고 동화책 한 권을 읽으면 음성이 통째로 녹음되고, 나중에 아이가 동화책을 기기에 갖다 대면 엄마 목소리로 된 녹음이 저절로 재생된다.

알로하아이디어스는 제품 판매뿐만 아니라 한국어에 취약한 다문화 가정의 엄마 대신 재능기부자가 담뿍이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목소리 기부 캠페인’(일명 보이스버킷 챌린지)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유명 연예인과 현대자동차 임직원 등이 목소리를 기부한 담뿍이를 다문화 가정에 전달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일반 가정으로부터 목소리를 기부받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출시된 담뿍이는 벌써부터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목소리 기부 프로젝트로 홍보효과가 높아지면서 다문화 가정 아동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로부터도 구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김 대표는 “회원 수십만 명을 갖고 있는 육아 인터넷 카페에서 공동구매 문의가 오기도 했다”며 “다문화 가정 이외에도 직장에 다니는 엄마, 멀리 떨어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담뿍이의 수요층이 확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담뿍이의 대당 가격은 13만9000원이고, 인터넷 쇼핑몰이나 알로하아이디어스 홈페이지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다문화가정 아동을 위해 개발된 상품인 만큼 가격이 너무 높으면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알로하아이디어스는 저소득층에 속하는 다문화 가정에는 7만7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김 대표는 2015년 알로하아이디어스의 사업 목표를 해외 진출로 잡았다. 물론 1차 생산 물량 1000대를 상반기에 모두 판매한 뒤 2차 생산에 들어간다는 것이 1차 목표다. 이후에는 영국, 독일 등 북스타트 운동(아동에 대한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운동)이 발달한 선진국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영국의 유명 출판사가 판매해 보고 싶다는 뜻을 알려와 검토 중”이라며 “독서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와 담뿍이가 잘 맞아 떨어지면 성공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글·사진 =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