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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반인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정복한 손영조 씨가 지난 2일 자신이 근무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덕유산 관리소 앞에서 그동안의 등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손영조 국립공원공단 덕유산 관리소 과장
손영조(49) 씨는 ‘국립공원관리공단 덕유산 관리사무소 과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동시에 그는 지난해 11월 20일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스텐츠(해발 4884m) 완등에 성공, 일반인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그런 손 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1월 2일 함박눈이 쏟아지는 무주 구천동 계곡을 찾았다. 덕유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앞 찻집에서 인터뷰를 위해 처음 자리에 앉으며 그가 명함 대신 내민 책갈피에는 “손영조와 함께 가는 ‘세계 7대륙 원정대’, 끝이 보이지 않는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6번째 남극 대륙 최고봉 빈슨매시프 등정 후 만든 책갈피에는 대륙별 최고봉 등정 사진과 주요 등반 내력 등이 적혀 있었다. 높은 산을 오르려는 그의 ‘강한 의지’가 담긴 문구로 읽혔다.
그는 ‘직장인 겸 산악인’이라고 봐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산악인 겸 직장인’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과 산행을 병행하지만 직장은 삶의 과정이고 산행은 삶의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1년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해발 5642m)를 시작으로 2003년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59ｍ), 2004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ｍ), 2005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8ｍ), 2008년 세계 최고봉인 아시아 에베레스트(8848ｍ), 2010년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2ｍ) 등정 뒤 지난해 11월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스텐츠 도전까지 마무리했다. 14년의 세월 동안이다.
사실 그가 이룬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은 산악인들 사이에선 ‘세계 8000m급 14좌 완등’에 버금가는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전문 산악인과 달리 일반 직장인으로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짧은 휴가를 내고 원정 비용조차 스스로 마련해 떠나야 했던 도전이어서 더욱 값진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높은 산에서 마주하는 위기는 생사의 갈림길로 이어집니다. 인생도 산처럼 두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도전하지 않는다면 어느 분야에서든 결코 정상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눈 내리는 무주 구천동 계곡 설경 속에서 그와 마주하면서 두 시간 넘게 ‘14년간의 세계 7대륙 최고봉 도전기’를 들었다. 그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순간’들이었다. 그는 그 가운데에서도 “세계 7대륙 중 마지막 등정길이었던 오세아니아 칼스텐츠에서 베이스캠프로 가기 위해 일주일간 헤맸던 정글과 마지막 정상 등정을 위한 800ｍ 암벽 등반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칼스텐츠는 정상 등반도 힘들었지만 일단 베이스캠프로 가는 과정이 험난했습니다. 열대성 기후의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정글을 일주일간 헤쳐 나가야 했습니다. 벌레와 소나기성 비는 지금 생각해도 고통이 느껴질 정도이고 정상을 향해 올라야 하는 800ｍ 암벽도 1박 2일이나 올라가야 할 만큼 험난했죠. 그처럼 험난한 인고의 과정을 거쳐 오른 칼스텐츠 정상의 날씨는 1년에 몇 번 없는 쾌청한 날씨였어요. 14년간의 고생을 위로해 주듯 칼스텐츠 정상에서 본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4884m 칼스텐츠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퍼펙트 성공’ ‘파이팅’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환호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북미 최고봉 알래스카 매킨리에선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화이트 아웃’ 상태에 빠졌습니다. 화이트 아웃은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이며 원근·공간감각이 사라진 시야 상실 상태인데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극한의 공포, 영하 30∼40도의 혹한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했습니다. 매킨리에서 사망한 고 고상돈(1979년 사망) 선배와 일본의 유명 산악인 고 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己·1984년 사망)처럼 정상을 밟지 못하고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 자리에 배낭을 깔고 앉았습니다. 감히 신(神)이 존재하셔서 날 버린다면 죽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으며 속절없이 웅크리고 있는데 2시간쯤 지날 무렵 쫙 앞길이 열렸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시야가 트인 거죠.”
사실 그가 오른 7대륙 최고봉 높이만 합해도 모두 4만3317m로 마라톤 풀코스보다 더 긴 산을 오른 셈이다. 14년 동안 대륙별 최고봉에 도전하면서 수없이 맞이했던 죽을 고비도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는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단 한 곳도 쉽게 오른 서밋(정상)이 없지만 죽을 고비를 세 번씩이나 넘기며 정상 공략에 성공한 2004년 알래스카 매킨리 도전이 최고로 어려웠다고 말했다. 손 씨는 앞서 말한 화이트아웃이 매킨리에서의 첫 번째 죽음의 위기였다면 정상 200여m 앞에서 만난 칼날 능선과 하산길에 빠진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는 잇따라 자신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최악의 순간들’이었다고 말했다.
“도저히 혼자서는 통과할 수 없는 칼날 능선을 만났지요. 한 사람이 4∼5m를 전진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뒤에서 생명줄을 잡아주고 다시 앞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뒷사람이 전진해야 하는 2인 1조 공략 코스였죠. 그 칼날 능선을 홀로 통과했습니다. 정상 도전에 함께 나선 후배가 체력적 한계로 포기하고, ‘나 홀로 도전’을 운명처럼 여기며 전진했습니다. 49%의 두려움을 51%의 용기로 극복하며 정상을 밟는 데 기어코 성공했습니다. 삐끗하기만 해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이겨낸 것이었죠.”
또 매킨리 하산길에 크레바스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세 번째 위기도 떠올리며 신의 존재를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나 홀로 등정에 성공한 뒤 후배와 함께 조심스럽게 베이스캠프 쪽으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제 발목이 쑥 빠져버리는 겁니다. 크레바스를 만난 거죠. 푹∼ 좁고 깊은 크레바스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앞서간 후배는 난청이 심해 제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어깨 쪽에 메고 가던 아이스 피켈이 저를 살렸습니다. 아이스 피켈이 얼음 모서리에 걸리면서 제 몸이 출렁하고 멈춰선 순간 필사적으로 잡고 버텼죠. 그 좁은 공간에서 어깨에 멘 배낭을 풀고 몸을 고정한 채 한 발 한 발 빠져나왔습니다. 겨우 얼음벽 크레바스 사이를 빠져나온 뒤에야 앞서간 후배가 되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이 저를 잡아 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 직장인으로 원정비용 부담, 직장에 휴가를 내는 문제, 가족들의 만류 등을 이겨내고 어렵게 어렵게 원정길에 나선 그에게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죽음이라는 절박한 위험 상황을 만나는 경우가 많은 고산 등정의 이유를 물어봤다.
“제 고향이 전북 남원입니다. 지리산을 마주 보며 살았죠.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백무동 능선 코스로 천왕봉까지 올랐습니다. 등산의 참맛을 처음으로 느낀 거죠.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사회 진출 후 전문 산악 클럽 활동으로 지리산뿐만 아니라 국내 유명 산을 등반하고 다녔습니다. 산악인들 사이에선 나름대로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했죠. 그만큼 어려서부터 산이 좋았던 거죠. 물론 지리산이 나를 키워낸 거나 마찬가지이고요.”
손 씨는 신문 배달이나 노동판 아르바이트 등 가난해서 더 강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산악인으로 기본 체력이 이미 청소년기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제가 ‘고소(高所)’, 다시 말해 높은 산에 강합니다. 해발 2800∼3200m를 지날 때 고소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구간을 넘기면 다른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지고 구토 증상에 근육이 풀리며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오는데 저는 오히려 편안해집니다. 체질적으로 강한 심폐 기능을 갖춘 것 같습니다. 무속인이 신 내림을 거부하면 무병이 생기는 것처럼 산에 오르지 않으면 제 몸에 이상 증상이 오고 일상이 불안하고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그는 “높은 산을 오르며 부딪혔던 극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천부적 신체 조건에 대해 스스로 놀랄 때가 많았다”며 “‘산악인의 삶’은 자신에게 운명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사실 사회 초년병 시절, 다니던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도 때려치우고 현 직장인 국립공원으로 옮겼습니다. 2∼3일씩 산에 가고 싶은데 건설회사 형편상 공사현장 공정에 매달리다 보면 산에 자주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1994년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입사해 맘 놓고 산엘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그해 등산을 함께하던 후배 소개로 지금의 아내도 만나게 됐죠. 이후 5년 만인 1999년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키나발루(4101m)로 해외 원정을 떠났습니다. 무작정 떠난 거죠. 키나발루 등정 성공으로 자신감이 생겨 2000년 밀레니엄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해외 원정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아무리 작은 원정대를 꾸린다 해도 한 번 나갈 때마다 수천만 원씩 드는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는지 묻자 바로 ‘빚쟁이’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주위 분들에게 금전적으로 많은 빚을 지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직장에서 급여도 받고 있지만 해외 원정 비용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은행에서 대출받고 주위 분들의 지원도 받고 최대한 비용을 아끼며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마음으로 해결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7대륙 완등을 회고하며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고 생각한다”며 책갈피 속 ‘끝이 보이지 않는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다’는 문구처럼 또 다른 산행 계획을 털어놨다.
“7대륙 최고봉 완등 후 잠깐 허망하고 허전하다는 느낌이 엄습했습니다. 완등의 기쁨보다 모든 게 비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순간 세계 3대 미봉 중 한 곳인 히말라야 아마다 블람(6954m)이 제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청소년기 암벽 등반 추락사고로 다친 오른쪽 발목 장애도 산행 의지를 꺾지 못했다”며 “또다시 갖게 된 꿈과 도전의 희망봉 아마다 블람 등정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박팔령 기자 park8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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