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사랑한 작품을… 작가가 사랑한 작가를… 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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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 / 앙드레 지드 지음, 이효경 옮김 / 글항아리

같은 분야에 몸담은 선배나 동료를 평가해야 하는 순간은 참으로 곤욕스럽다. 칭찬은 아부로, 비판은 비난으로 비치기 쉽다.

생각대로 말을 했다간 ‘너는 얼마나 잘났기에…’라는 말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자존심이 강한 작가들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동료의식이 강하고, 마땅한 평가기준도 없기 때문에 인물이나 작품에 대한 평을 자제한다.

그럼에도 여기, ‘선수’가 ‘선수’와 ‘선수의 작품’을 평한 책이 있다. 최근 출간한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과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다.

저자는 각각 1946년과 194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1877∼1962), 앙드레 지드(1869∼1951·맨 위 사진).

워낙 뛰어난 작가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라본 작가와 작품에 대해 궁금증부터 인다.

헤세는 자신이 사랑한 책들을, 지드는 자신이 사랑한 한 작가를 위해 썼다.

독일 문학의 거장 헤세는 굉장한 애서가였다.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며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도망친 그는 서점 조수로 소일했다. 스물 한 살이던 1898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을 내고 일찍 작품활동을 시작했지만, 서점에서 받는 보수가 넉넉하지 않은 탓에 신문 문화면에 서평을 기고했다. 서평은 그가 생활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독서를 바탕으로 키운 문학적 역량을 펼치는 마당이었다.

1900년 스위스 일간지 ‘알게마이네 스위스 서문’에 첫 서평을 쓴 헤세는 이후 시인이자 소설가, 화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도 서평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러 신문과 잡지, 출판사에서는 헤세의 서평을 받기 위해 책을 수시로 보냈다. 그는 읽은, 또는 읽지 않은 책들의 더미에 항상 파묻혀 있었고, 숨을 거두기 전까지 무려 3000여 편의 서평과 작가에 대한 에세이를 남겼다. 덕분에 당시 신문 독자들은 대작가의 서평을 보고 읽을 책과 작가를 선택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특히 헤세는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는 책들에 대해서는 발언 자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헤세 전집 편집자 폴커 미헬스는 “헤세는 근본적으로 오로지 추천할 만한 작품들, 자신에게 무언가 모범이 되고 타당성을 가진 책들, 즉 ‘어쩌면 내일 또는 모레까지도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되는 책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논할 가치가 있는 작품들에 대해서만 서평을 썼던 셈이다.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글 73편을 묶었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비롯해 도스토옙스키,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만, 크누트 함순, 로맹 롤랑 등의 작품에 대한 서평이 실려 있다. 키르케고르 선집 ‘선민의 개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 등 철학·심리학 분야의 책에 대해서도 논한다.

헤세는 ‘미성년’ ‘백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소개하며 “삶 전체가 그냥 하나의 타는 듯한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 절망을 숨 쉬고, 희망 없음의 죽음을 겪을 때 우리는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고 극찬했다. 게르만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에 반대해 대중들로부터 반(反)애국자로 비난받았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위해 자신의 작품 ‘자라투스트라의 귀환’의 서평을 기고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옛날 옛적에는 집단의 소음과 대중의 열광에 사로잡히지 않고도 의견을 내놓는 독일의 정신, 용기, 남성성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마지막 위대한 정신이 니체였다.(…) 나의 호소는 그를 기억하고, 그의 용기와 그의 고독을 상기하라는 것이다.”

책에는 헤세가 당시 유럽에 막 소개되기 시작한 중국·인도·고대 이집트의 문학과 철학, 종교 서적들을 먼저 읽고 독자들에게 권한 흔적도 만날 수 있다. 공자의 ‘논어’, 노자의 ‘도덕경’, 열자의 ‘열자’, 인도의 동화인 소마데바의 ‘동화 강들의 바다’ 등이다. 당시 독자들이 책 내용을 유추할 수 있도록 ‘논어’가 ‘대화’, ‘열자’가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참된 책’, 포송령의 ‘요재지이(聊齋志異)’가 ‘중국의 유령 이야기, 사랑 이야기’로 제목이 바뀐 것이 흥미롭다.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이 헤세가 본 다수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면, 지드의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는 오로지 한 선배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891년 데뷔조차 하지 못한 문학청년 지드는 15세 위의 영국 인기작가 와일드를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부유했고 키와 외모가 출중했으며 명예와 행운이 흘러넘쳤던” 와일드는 이후 동성애 혐의로 고소당해 2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빛을 잃었다. 동료들과 대중들도 와일드를 비난하며 등을 돌렸고, 그는 초라한 죽음을 맞았다.

와일드를 구명하기 위해 진정서에 서명까지 했던 지드는 무덤에 헌화하듯 그와의 대화를 되살려 쓴 글들을 모아 이 추모집을 발표했다. “와일드는 결코 위대한 작가가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위대한 삶의 애호가였다”고 평하면서 오직 예술적 고유성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들던 그를 기렸다. 책에는 지드가 와일드에게 건네는 애정과 애도, 동경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출판사 글항아리는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문인이 쓴 문인의 삶’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