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북레터>모두가 타고난 이야기꾼… “당신에 대해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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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월러스의 동명 소설을 옮긴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에는 희대의 허풍쟁이가 나옵니다. 지금은 초라한 노인인 에드워드는 입만 열만 허풍이지요. 태어나자마자 온 병원을 헤집고 다녔고, 거인을 정복했고, 아름다운 인어와 사귀었고, 수많은 이를 구한 전쟁 영웅이었다고 말입니다. 아들 윌은 이런 아버지를 견딜 수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진실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지요. 하지만 에드워드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윌은 아버지 이야기가 완전히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과장, 허풍, 잘못된 기억들이 들어가긴 했겠지만 그것이 아버지 자신의 드라마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 에드워드는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주인공인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사람들은 모두 타고난 이야기꾼입니다. 소설을 쓰거나 하다못해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입담’이 없다 해도 말입니다.

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꾼 DNA에 주목한 사람이 소설가 조지 도스 그린입니다. 그는 고향 조지아주의 무더운 여름밤, 불빛 주변으로 모여드는 나방을 벗 삼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따뜻한 추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1997년 자신의 뉴욕 집 거실에서 이 시간을 재현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말입니다. 행사 이름은 나방이라는 뜻의 ‘모스(Moth)’로 붙였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스는 크게 성공했고 미국 전역으로 확대됐습니다. 그동안 각계각층의 3000여 명이 모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모스’(북폴리오·사진)에는 이 3000여 건 중에서 세심하게 고른 50건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누명을 쓰고 18년간 복역한 청년, 우주 공간에서 허블망원경을 수리하다 나사를 풀지 못해 우왕좌왕한 우주비행사….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사고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희극작가 아이젠버그는 열여섯이 되어서야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식탁 밑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모스가 성공한 이유는 이야기의 진정성,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한 사람의 이야기를 같이 들으면서 느끼는 공감, 그 순간 이뤄지는 관계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참가자 중에는 평범한 사람도 있고,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스 진행자들이 출연자에게 하는 첫말은 모두 같다고 합니다. “자신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지금의 당신이 되었나요?” 그 질문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