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목욕탕·비키니·양말·가위… 이 모든 것은 로마제국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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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 /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김정하 옮김 / 까치

로마 하면 지금은 이탈리아의 수도를 떠올리지만 이천 년 전만 해도 로마는 지중해 일대를 지배한 거대제국이었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란 양치기 청년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로마는 처음에는 아주 작고 약한 도시국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원전 2세기 무렵에는 이미 에스파냐, 그리스, 소아시아를 정복하고 이집트를 보호국으로 만들며 강력한 국가로 거듭났다. 이후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는 1453년까지 1000여 년간 제국으로 역사 속에 군림했다.

오래전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천년제국 로마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수수께끼다. 대체 로마 제국이 다양한 사람과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며 번영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로마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또 그토록 강력한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고 알고 싶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나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 같은 책이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런 궁금증에 답하는 책들이 대개 로마 제국의 역사를 종으로 풀어내는 것과 달리 ‘고대 로마 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는 다른 시도를 한다. 기원후 98년에서 117년까지 재위한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아 횡적으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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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알베르토 안젤라는 전작인 ‘고대 로마인의 24시’에서 로마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히고, 부와 번영을 이뤘던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루 동안 일어난 로마의 일상을 살핀 바 있다. 일종의 속편 격인 이 책은 로마에서 통용되던 한 닢의 동전 ‘세스테르티우스’의 여행을 따라간다. 로마로부터 런던과 파리를 거쳐 스페인과 프로방스 그리고 이집트까지 당시 로마 제국이 다스리던 영토를 유람하는 광대한 여행이다.

원래 돈이란 돌고 도는 것. 동전은 귀족, 노예, 매춘부, 시인, 부유한 여인, 검투사, 여행객, 포도밭 농장주 등의 손을 거치며 제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동전을 따라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은 당연지사. 일일드라마를 뺨칠 구구절절한 로마인의 사연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로마의 풍속, 문화, 발명품 등 박물학적 지식까지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책 속에 담긴 흥미로운 로마인들의 이야기는 꾸며낸 것은 맞지만 모두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를 기반으로 재구성했고 인물들 역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란다.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로마인의 현대성이다. 2000여 년 전 사람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인과 유사한 면이 많다. 많은 로마인이 자유롭게 이혼했다. 역사 속에 등장한 인물들, 예컨대 카이사르는 한 번 이혼했고, 키케로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고 부유한 여성과 재혼했다. 이런 풍속의 저변에는 항상 돈 문제가 따라다녔다. 일부 계급에 한정되지만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독립적이었고, 돈이 많은 여자는 남편을 통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적 독립이 정신의 독립을 뒷받침하는 법이다.

문명의 기원으로서 로마의 위대함도 굉장하다. 도로, 공중목욕탕, 비키니, 양말, 훈제 돼지고기, 가위, 콘크리트, 하수구, 확대용 돋보기는 모두 로마 시대에 고안됐다.

버버리나 지방시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신제품이라며 내놓는 신발도 가만히 뜯어보면 로마 병사들이 신었던 ‘칼리가이’의 현대적 복제품이다. 최초의 세계화를 이룬 것도 사실 로마이지 않은가. 한 가지, 저자는 호시탐탐 영국의 런던이나 프랑스의 파리 같은 메가시티가 당시 로마에 비할 수 없는 미개한 지역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책은 로마의 영광과 위대함을 당대 로마인의 삶이라는 구체성을 통해 증명하는 작업으로도 읽힌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