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환관이란 단어에 익숙하다. 조선 시대 말까지 존재했고, 사극 드라마에서도 항상 빠지지 않기 때문. 구체적인 신체적 특징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제 3의 성(性)’이 탄생하게 된 걸까.
일본 대표 동양사학자 미타무라 다이스케(三田村泰助·1909∼1989) 전 리쓰메이칸(立命館)대 명예교수는 이를 중국 역사 속에서 추적한다. 미타무라 교수의 전공이 환관의 폐해가 극심했던 청 왕조사(史)이기도 하지만, 환관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막대하고 또 길었던 나라가 또한 한·당·명(漢·唐·明) 왕조 등 중국이기 때문이다. 환관은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나서야 폐지된다. 또 다른 연구자 하시카와 도키오(橋川時雄) 박사가 ‘환관 비망록’(1959)에서 1924년 쯔진청(紫禁城)의 풍경을 묘사했을 때만 해도 환관의 수가 48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환관은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이다. 현대의 언어로 굳이 풀어내자면 ‘그림자 비서’일 텐데, 책의 부제인 ‘측근 정치의 구조’는 요즘 정치권을 중심으로 떠들썩한 ‘십상시(十常侍)’를 떠올리게 한다. 이 말 또한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때 권력을 잡고 조정을 휘두른 환관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환관이 중국만의 특산은 아니다. 저자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 투르크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지중해에서 아시아의 전 지역에 걸쳐 존재했으며, 한반도에서는 조선조 말기까지 중국처럼 쭉 이어져 왔다”고 말한다. 오히려 세계의 문명국 중 환관이 존재하지 않은 나라는 일본뿐이다. 일본인 학자의 연구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책에 따르면 중국에는 환관을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도자장(刀子匠·집도하는 사람)이 있었다. 수술료는 한 사람당 6량(현재 기준으로는 20만400엔·약 185만 원). 도제식으로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몇몇 가족의 세습적인 일로 인식됐다. “조수 한 사람은 그의 허리를, 다른 두 사람은 다리를 각각 꽉 누른다. 여기에 칼을 든 집도인이 자궁(自宮·스스로 남성을 포기하는 것) 지원자에게 “후회하지 않는가”라며 다짐을 받는다. 마지막 순간에 조금이라도 미적거리면 수술은 이뤄지지 않는다. 만일 승낙의 뜻을 보이면 칼이 일섬(一閃·빛 따위가 한 번 번쩍임)하고, 환관이 탄생한다.”(8쪽) 자세한 수술 방법은 생략한다. 어느새 미간을 찌푸리게 될 테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908~ 2004)이 1949년 청 말기의 환관을 촬영한 ‘북경의 환관’. 작고 마른 몸, 여성스러운 표정 등이 나이와 성을 잊은 듯한 모습이다.
저자는 환관이 기원전 14세기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본다. 정복 과시를 위해 이종족 포로의 성기를 제거한 결과 환관이 태어났다는 것. 즉 이는 잔학성과 신성한 행위가 뒤섞인 산물이다. 반면 당시에는 자기 혈족은 절대로 거세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었다.
책은 환관의 기원과 그들의 생리적·심리적 특징, 그리고 거세의 방법까지 자세하게 펼쳐 보인 후, 그들이 중국 역사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추적한다. ‘환관의 나라’로 불렸던 당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환관이 근위병까지 장악하게 된다. “군주가 피신해 있거나 수도에 있을 때라도 불의의 병변에 대처하려면 신속하게 근위병을 지휘해야 했는데, 환관은 제도상 현종 이래로 장군이 될 자격이 있었으므로 근위병의 지휘권은 늘 환관의 손에 있었다. 그 결과 황제의 안전은 일단 확보했는지 모르지만, 환관이 강력한 존재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막지 못했다.”(201쪽)
환관과 맺어진 여러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설명하고, 환관이 뚜렷하게 활약했던 한·당·명나라를 대상으로 삼아 각각의 시대적 배경과 특색을 짚어본 방식은 돋보인다. 다만 일본어 초판이 1963년에 발행된 이 ‘옛’ 책의 아쉬움은 후반부로 갈수록 커진다.
특히 일본에 환관이 존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한반도와의 고대 관계를 언급한 부분은 ‘일본인’으로서의 한계를 보여준다. “일본 고대사회에서는 다른 민족과의 폭넓은 접촉이나 그들을 정복한 적이 없었다. 한반도 남부와의 관계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결국 섬나라라는 일본의 자연환경이 환관이 없게 된 결정적인 조건이라 볼 수 있다.”(264쪽) 이에 대해선, “근대 이전의 일본에서는 천황이 강력한 중앙집권을 행사하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 옮긴 이의 말을 참고하는 게 낫다.
지은이는 1950∼196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한 역사가로 1989년에 작고했다.
다만, 이 책이 현대 사회에 주는 시사점이 그 아쉬움을 상쇄한다. 바로 현대의 ‘환관적’ 인간에 대한 지적이다. 그는 “이 환관의 망령이 도처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환관을 탄생시킨 것이 권력기구인데, 그 형태는 지금도 세계 어느 국가나 사회에도 존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m class='emp_01'>[속보]</em> 하이브, 민희진 고발…“뉴진스 데리고 나간다” 대화록 확보](http://image.munhwa.com/gen_thumb/202404/2024042501039912069001_300.jpg?v=20240425091520)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