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백지화-재추진 소동’ 건보개편안 어떤 내용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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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 승차’ 고소득 피부양자 19만명에도 부과 추진

전 국민이 가입자인 건강보험을 놓고 나라가 시끄럽다. 정부가 건강보험료 납부 시스템의 대수술을 추진하다가 발표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백지화한 것이 발단이다. 모든 언론은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한목소리로 정부의 백지화 결정을 비판했고, 여론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재산이 많은 고소득자는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고,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저소득층은 부담스러운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현 제도의 불합리함이 백지화를 계기로 폭발했다. 아울러 정부가 일부 고소득층의 부담을 우려해 백지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적 불만은 확대됐고, 급기야 여당에서조차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정부와 새누리당이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다시 추진키로 방향을 정하면서 원점으로 돌아왔다. 논란이 많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상세히 살펴봤다.


1. 건보 부과체계 개편이란

현행 건강보험료를 내는 방식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별로 구분돼 있고, 부과되는 방식도 각기 다르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월급)만을 기준으로 건보료가 부과된다. 월급 외에 저축이나 주식투자, 임대사업은 물론 부업으로 사업을 벌여도 건보료 산정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부가 최근에 근로소득 외 소득을 얻는 직장인에게 건보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는데 그 기준이 7200만 원으로 높아, 대부분 직장인은 월급에 대한 건보료만 낸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사업, 이자, 배당, 연금, 근로 및 기타소득 등 종합소득 외에 부동산 등 재산, 자동차도 건보료 산정기준에 포함된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은 이같이 다른 방식의 건강보험 부과체계를 소득 등의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하는 것이 골자다.


2. 왜 개편 추진했나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부과되는 건강보험료로 인해 형평성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득을 얻거나, 생활 수준이 같아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사이에 건보료가 다르다. 소득이 높지만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되면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내는 ‘무임승차’도 많다. 또 가입자가 직장에서 지역으로, 또는 지역에서 직장으로 가입 자격이 바뀌어도 건보료가 크게 바뀐다. 건보료가 각 가구의 부담 능력에 맞게 부과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퇴임 전에 “나는 수천만 원의 연금소득이 있고, 재산도 5억 원이지만 퇴직 후 피부양자로 등록돼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다”며 “그러나 약 1년 전 밀린 공과금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는 매달 5만140원의 건보료를 냈다”며 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비판한 바 있다. 이 같은 이유로, 건강보험공단에는 형평성 관련 불만을 호소하는 민원만 연간 6000만 건에 달한다.


3. 어떤 방향이었나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02년 8월 건강보험공단쇄신위원회를 열고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중심으로 단일화하는 방향을 정했다. 2013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을 국정과제로 채택했고, 복지부는 7월 학계, 노동계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출범시켰다. 기획단은 11차례 회의를 통해 2014년 9월 근로소득자의 월급 외에 2000만 원이 넘는 이자소득·연금 소득 등에도 보험료를 부과하고,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에게는 정액의 최저보험료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기획단은 이 방안을 토대로 2015년 1월 29일 최종회의를 열고 확정안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기획단 최종회의 하루 전인 2015년 1월 28일 부과체계 개선을 올해 안에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4. 기획단 개편안 내용은

기획단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은 모든 가입자에게 되도록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기획단이 유력하게 고려한 개편안은 월급 이외에 이자 등 고소득을 올리는 직장인의 보험료를 올리고,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내리며, 많은 소득이 있지만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했던 가입자도 건보료를 내게 하는 방안이다. 현재도 직장가입자 중에서 월급 이외에 별도의 종합소득이 연간 7200만 원 이상인 4만여 명은 보험료를 추가로 더 내고 있다. 기획단은 이 기준을 낮춰 보수 이외의 종합소득이 연간 2000만 원을 넘는 직장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더 부과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되면 고액 자산 직장인 약 27만 명이 보험료를 추가로 더 내게 된다. 고소득 피부양자에게도 보험료를 물리기 위해, 피부양자의 각종 소득을 모두 합친 연간 합산금액이 2000만 원(월 167만 원)을 초과하면 보험료를 내도록 했다. 이 경우 피부양자 19만 명이 보험료를 내야 한다. 또 지역가입자들도 기본적으로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되, 소득이 없거나 적은 저소득 가구의 생활 수준(실질 부담능력)에 맞는 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5. 정부 중단 선언 왜 했나

기획단의 기본 방향에 맞춰 건보료 부과체계가 개선되면 전체 지역가입자의 80%가량인 600만 세대 이상의 건보료가 지금보다 낮아지고, 보수 외에 추가 소득이 많은 일부 ‘부자 직장인’이나 연금 등의 소득이 많은 ‘고소득 피부양자’ 등 46만 명가량은 건보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고소득자 약 46만 명의 반발을 부담스러워한 것이 개선을 중단한 가장 큰 요인으로 평가된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환급금 축소 등으로 연초부터 증세논란이 심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46만 명에 달하는 고소득층이 건보료를 더 내게 될 경우 반발이 더 심화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보수 상류층이 많을 가능성이 높은 점도 정부가 정책집행에 부담을 가진 배경으로 풀이된다.


6. 중단 선언후 여론 반응은

여론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강하게 항의했고, 야당에서도 무책임한 정부라고 공격했다. 소수의 고소득층만을 위한 정부라는 비판까지 나오면서, 청와대는 복지부의 개선 중단 선언이 복지부 자체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여론 악화를 막지는 못했다. 개선안을 도출했던 기획단에서도 정부에 대한 비판이 나왔고, 기획단 위원장은 사퇴성명을 내기도 했다. 새누리당도 건보료 개선을 중단한 정부를 비판했다. 결국 정부와 새누리당은 2월 3일 조만간 당정회의를 열어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재추진하는 방향에 대해 논의키로 했다. 정부가 논의중단을 선언한 이후 6일 만에 재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7. 재추진 어떻게 진행될까

정부는 새누리당과 당정협의를 통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을 재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정이 기획단이 제출했던 안으로 건보료 부과체계를 개선할지는 미지수다. 기획단이 만든 안은 정부 안이 아닌 권고안으로서 당정협의 과정에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획단 위원들에 따르면 애초에 현 부과체계를 대폭 변화시키는 것에 부담을 가져왔던 정부가 기획단 안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직장가입자의 소득 부과기준을 기획단 안보다 더 완화해 건보료를 더 내야 하는 사람의 범위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백지화 논란을 겪으면서 정부가 기획단 안을 그대로 추진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초에 백지화를 선언하지 않고 추진했더라면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직장가입자들의 반발로 증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백지화 논란을 겪으면서 기획단 안이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정부의 정책추진이 한결 쉬워졌다는 것이다.


8. 4월 건보료 정산이란

매년 4월마다 연말정산과 같은 방식으로 직장가입자에 한해 전년도 보수총액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가 정산된다. 지난해 월급 등이 올라서 소득이 증가한 직장인은 건보료를 더 내야 하고, 임금이 줄어든 직장인들은 건보료를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해마다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를 산정할 때 전년도 보수총액을 기준으로 한다. 해가 바뀌어 월급이 인상되는 것은 산정기준에 적용되지 않은 채 부과하는 것이다. 그래서 건보공단은 그다음 해 3월에 전년도 소득자료를 토대로 보험료를 다시 산정한다. 이 차액을 그해 4월분 보험료에 추가 부과하거나 반환하는 방식으로 정산하고 있다. 지난해는 직장가입자 1229만 명의 61.9%인 761만 명이 임금이 올라 1조9226억 원을 추가로 냈고, 238만 명(19.4%)은 소득이 줄어들어 3332억 원을 돌려받았다. 임금변동이 없는 230만 명은 정산 보험료가 없었다.


9. 그밖의 건보 개선 과제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현재 상황에서는 흑자지만,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노인진료비가 급증하면서 재정악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건보공단의 ‘2014~2018 건강보험 재무관리계획안’에 따르면 건보 재정은 올해 1321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지만 2016년부터 3년간 연이어 1조4797억 원, 1조5684억 원, 1조9506억 원의 적자가 각각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후 적자규모는 더 늘어 2020년 6조3000억 원, 2050년에는 102조1700억 원으로 1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10. 건보 보장성 확대 가능한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논란 속에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중기 보장성 강화 계획’을 보면 4대 중증 질환과 노인 임플란트, 임산부와 고도비만 환자 지원 등에 오는 2018년까지 7조4000억 원의 재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신규 보장성 강화에 드는 재원은 매년 3500억 원꼴이어서, 별다른 재정 부담은 없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이미 올해 들어 건보료를 1.35% 올린 데다 이번 보장성 강화에도 2000억 원을 미리 반영해놨다는 것이다. 하지만 7대 국정과제와 신규 중기 보장성 계획까지 차질없이 수행하려면 현재의 건강보험료율보다 매년 0.9%씩 더 높은 보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 이럴 경우, 최소 매년 0.9%씩의 보험료율을 올려야 하고, 2016년에는 최소 6.12%, 2017년에는 6.18%, 2018년에는 6.23%로 보험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