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병에도 꿋꿋해 보이는 효자들… 그들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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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 / 히라야마 료 지음, 류순미·송경원 옮김 / 어른의 시간

지난 2010년 일본 후생노동성의 ‘국민 생활 기초 조사’에 따르면 부모와 같이 살며 ‘거의 온종일’ 간병하는 ‘주요 간병인’ 중 아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2.0%. 수치가 낮다고 느끼는지 의외로 높다고 느끼는지. 주 간병인들을 살펴보면 아내 36.8%, 며느리 17.2%, 딸 15.6%, 남편 14.3%로 아들은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1977년부터 30여 년 동안 딸 비율은 큰 변화 없이 20% 미만을 유지한 반면 며느리는 1977년 37.0%에서 2004년 23.3%, 2010년 17.2%로 떨어졌다. 반면 아들은 1977년 2.4%에서 6배 이상 늘었으니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

우리 상황은 어떨까.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간병이 주로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에서 ‘간병하는 아들’ 문제는 사회적 논의는 물론 실태 파악조차 안 됐을 것이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전공이 남성 관계학인 일본 사회심리학자가 이 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간병하는 아들’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함구하면서 이 문제는 일본 사회에서 ‘블랙홀’이 됐다고 비유한다. 책은 저자가 도쿄(東京)와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부모를 간병하고 있는 30∼60대 남성 28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일상, 관계, 심리를 자세하게 전한 것이다. 이들 부모들은 대부분 치매를 앓고 있었다. 남성 관계 전문가답게 책은 사회복지나 의료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저작과는 접근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공공 서비스 혹은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식의 정책 제안도 없다. 그 대신 간병이 이들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고,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집중한다. 책의 전체적인 핵심이라면 관계맺기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남성들이 간병을 할 경우 문제가 매우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책은 아들 간병 비율이 왜 증가하는지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한다. 이유는 상식적이다. 자녀 수가 감소하고, 당연히 외아들일 가능성도 높아졌다. 평생 독신으로 살거나 늦게 결혼하는 경향도 간병하는 아들이 늘어나는 이유이다. 비정규직이 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아들이 경제력이 있는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한 채 독신으로 중년을 맞는 경우, 이들은 부모의 간병인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간병이 단순히 한 개인이 약하고 병든 어머니·아버지 혹은 아내·남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 직장, 친구 관계에 엄청난 변화를 준다는 것이다. 책은 간병하는 아들이 겪는 아내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지역사회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그의 돌봄을 받는 아버지·어머니와의 관계를 꼼꼼하게 살핀다.

예를 들어 부인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더 돈독해질 수도 있고, 파경에 이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남자 형제와는 비교적 문제가 없지만 여자 형제에게는 불만을 품어 격렬하게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여자 형제가 적극적으로 간병에 관여하려 할 경우 이들의 불만은 폭발한다.

간병을 하면서 처음으로 혼자 집안 일을 도맡게 된 아들들은 더 문제다. 부모를 간병하기 전에 집안 일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아들은 집안 일, 특히 부엌일 때문에 악전고투를 하고 집안 일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간병이 점점 부담스러워진다고 하니,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게다가 간병하는 아들들은 대부분 회사에도 이에 따른 어려움을 말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도 한두 번 이야기하다 푸념을 늘어놓는 것 같아 더 이상 털어놓지 못한다. 지역 네트워크는 평소에 구축해 놓지 못한 탓에 도움을 받지도 못한다.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지도 못하고, 타인의 개입도 꺼릴 경우 최악의 경우로 몰려간다. 일본에서 2000년대 접어들어 고령자를 학대하는 가해자 중 가장 많이 보고된 사람은 며느리가 아닌 아들이라는 점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남성들이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약점을 오히려 강함이라고 잘못 생각한다”며 “자신뿐 아니라 간병을 받는 부모를 위해서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더이상의 딱 떨어지는 대책을 제안하지 않는다. 그 대신 모두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말한다. “나도 나중에 부모님을 간병하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남성,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하고 있다면 이 책의 주인공은 당신이다”고. 그럼 여성은 간병하는 아들과 무관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자신의 남편이나 형제가 간병하는 아들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남편이 간병을 하게 된다면 당신과 남편의 관계는 어떻게 바뀔까? 오빠나 남동생이 부모를 간병하게 된다면 당신은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더구나 아들이 있는 여성이라면 아들에게 간병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입장이 되므로 이는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