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경제, 사회적 기업 1000개 시대>아! 그 영화, 어르신 감성 찾는 ‘추억 여행’ 도와드려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청춘을 파는 극장’ 매표소에서 어르신들이 1981년에 개봉한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관람하기 위해 표를 구매하고 있다. 임정현 기자 theos@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청춘을 파는 극장’을 찾은 어르신들이 게시판에 붙어있는 영화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임정현 기자

“극장 문을 연 지 5년이 흘렀습니다. 어르신 관람객이 4배나 증가해 상영관 하나로 부족할 정도가 되었어요. 어르신들 쓸쓸하게 지내지 마시고, 여기 와서 젊은 시절 느꼈던 감수성 느껴보시라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좋아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12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청춘을 파는 극장’의 김은주 대표는 요즘 고민이 많다. 극장을 찾는 관객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데, 관객을 다 소화하기에는 하나밖에 없는 상영관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09년 55세 이상 어르신을 주요 관객층으로 한 청춘을 파는 극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관객은 하루 1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벤허(1959), 십계(1956), 미션(1986),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등 주로 1950∼1980년대 개봉한 영화 중 당해 흥행 순위 1∼5위 영화 위주로 상영작을 골랐다. 극장을 한 번 찾은 어르신들은 옛날 감성이 살아온 듯한 감동에 단골이 되었다. 단골 어르신이 동료 어르신을 데리고 극장을 방문하면, 친구분들 역시 극장의 단골이 된다. 김 대표는 “2009년 한 해 6만5000명이 다녀갔는데, 2010년에는 10만 명, 2012년에는 15만 명, 지난해에는 25만 명이 다녀가는 등 관람객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며 “10개 상영관을 가진 중규모 멀티플렉스가 보통 연 관객 40만 명 정도인데 비춰보면 상영관 1개 가지고 이정도 관객을 끌어모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낙원상가 일대는 청춘을 파는 극장을 매개로 어르신들의 문화공간 1번지로 자리 잡고 있다.

청춘을 파는 극장이 이처럼 어르신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옛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청춘을 파는 극장은 실버영화관에서 더 나아가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여가를 즐기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실 지금의 어르신들은 문화생활을 풍족하게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경우가 많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방문해 본 경험이 없거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젊은이 위주로 된 편치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해 마음 편히 방문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 대표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방문하면 몇 시에 무슨 영화를 상영하고, 대강의 영화 줄거리 정보는 어디서 얻을 수 있고, 표는 어떻게 사고 등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어려워 스트레스를 받다가 그냥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어르신이 많다”며 “청춘을 파는 극장은 70세 이상 어르신 직원들이 어깨띠를 착용하고, 처음 오신 어르신들에게 모든 시스템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고 말했다. 영화표가 얼마고, 어디서 표를 구매하고, 줄거리 정보는 어디 있는지 등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은 사항에 대해 의외로 많은 어르신들이 알기 어려워 한다. 동료 어르신들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줘 영화관에 익숙해지게 되면 어르신들은 자연스럽게 영화관 단골이 되고, 다른 어르신들과 교류의 시간도 갖게 된다. 김 대표는 “멀티플렉스에 가면 그런 배려가 전혀 없겠지만 여기서 근무하시는 어르신들은 처음 오신 분들이 어떤 난해함을 갖고 계실지 잘 알고 있다”며 “이런 사소한 배려들이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극장에는 총 11명의 어르신이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청춘을 파는 극장이 어르신들에게 옛날 영화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킹스 스피치(2010), 러브 액츄얼리(2003), 레미제라블(2012) 등 최근 몇 년 사이에 흥행한 영화도 상영한다. 이런 영화를 관람하고 난 뒤 어르신들 반응은 대체로 ‘요즘 영화도 재미있는 줄 몰랐다’는 것. 김 대표는 “어르신들은 텔레비전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떠드는 영화가 아니면 최근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잘 모르신다”며 “요즘에는 영화 정보가 인터넷에 널려 있지만 어르신들은 평생 신문 하단 광고를 통해 영화 정보를 얻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춘을 파는 극장의 단골 관객들은 보통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에 극장을 방문한다. 익숙한 옛 영화가 아닌 요즘 영화가 상영되면, 잘 모르지만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접하게 된다고 한다. 김 대표는 “처음엔 기대를 안 하시다가 보시고 나면 요즘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신다”며 “최근 영화도 섞어서 보여드리면서 어르신들이 문화적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청춘을 파는 극장의 소임”이라고 말했다.

청춘을 파는 극장은 사회적기업인 만큼 일반 영화관보다 관람권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어르신들에 대한 문화복지 차원에서다. 영화표 가격은 55세 이상이면 1인 2000원이고, 55세 이하일 경우 1인 7000원이다. 수입이 없는 어르신들이 부담 없이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김 대표의 철학 덕분에 극장이 문을 연 이후 단 한 차례의 가격 인상도 없었다. 일부 어르신들은 갈수록 관객이 많아져 객석 다툼이 치열한 만큼 관람권 가격을 올려서 관객을 줄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영화관 측에 제시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가격을 올리기보다 같은 층에 상영관을 하나 더 확보해 수용인원을 늘리기로 했다”며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이 영화를 통해 언제나 행복하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