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옆에서 때려도… ‘가정폭력 긴급조치’ 무용지물

7월부터 과태료 300만원… 체포 등 불가능, 효과 의문

“당신들이 나를 내 집에서 쫓아낸다고? 내가 알아봤는데, 당신들은 나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지난해 7월 서울 성동구 자양동에 사는 김모(46) 씨는 상습 가정폭력에 시달린 김 씨 아내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큰소리쳤다. 경찰은 아내에게 지속해서 폭행을 시도하는 김 씨를 제지하기 위해 그를 집 밖으로 퇴거시키는 ‘긴급임시조치’를 발동했지만, 김 씨는 “나는 내 마누라와 함께 자야 된다, 당신들이 뭔데 참견이냐”며 경찰을 향해 되레 으름장을 놨다. 퇴거 명령을 어긴 김 씨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경찰은 당황했고, 경찰 출동 후 더욱 흥분한 김 씨를 봐야 하는 김 씨 아내는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가정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가정 폭력 가해자에게 발동하는 격리·접근금지 등의 긴급임시조치를 어겨도 제재할 수단이 없어 가정폭력 현장에서 경찰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긴급임시조치는 경찰이 가정폭력 현장에서 직권 또는 피해자 신청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명령하는 것으로, 지난 2011년 10월 ‘가정폭력특례법’이 시행됨에 따라 도입됐다. 경찰이 가정폭력범을 대상으로 발동한 긴급임시조치 건수는 2011년 14건, 2012년 119건, 2013년 1002건, 2014년 1046건으로 매년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김 씨의 경우처럼 경찰이 출동해 가해자를 상대로 긴급임시조치를 내려도 불응할 경우 마땅한 제재 수단이 현재는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동한 경찰을 조롱하거나 출동 후 계속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마저 나타나고 있다.

처벌 법령 미비로 긴급임시조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지난 2014년 12월 가정폭력특례법이 개정·공포돼 오는 7월 1일부터 긴급임시조치 위반에 대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장에서 물리적인 격리를 위한 현장 체포 권한 등은 없고 과태료 부과만 가능하다 보니 여전히 공권력 행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 폭력 현장에 출동해 ‘과태료 부과하겠다’고 외친다고 해서 흥분한 가해자들이 순순히 경찰 말을 들을지 의문”이라며 “인신 상 제약을 통해 가해자를 폭력 현장에서 격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