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그림책’… 어둠 무서워 잠 못 드는 아이도 ‘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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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한 시에 검은 모자들이 찾아온다 / 오쿠하라 유메 글·그림, 이기웅 옮김 / 길벗어린이

밤은 두렵지만 마법과 같은 시간이다. 어둠은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 버린다.

방안의 불을 끄면 익숙한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시계 초침,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기침, 골목의 과속방지턱을 넘는 자동차의 덜컹거림까지 귀에 쏙쏙 와 닿는다. 잠이 들락 말락 할 때 실눈을 뜨면 천장에 드리운 그림자가 덮칠 것처럼 우리를 굽어다 보고 있다. 그 순간만큼은 이불 속이 제일 무섭고 아이들은 큰 용기를 내어 눈을 질끈 감고 잠들어야 한다.

그림책 ‘한밤중 한 시에 검은 모자들이 찾아온다’(일러스트)는 바로 그런 용감한 이불 속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다.

한밤중 한 시, 아이가 잠든 방에 검은 망토를 두른 검은 모자들이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모여든다. 이들은 말 한마디 없이 잠든 아이 곁에 둘러서서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검은 모자 하나가 소리 없는 명령을 내린다. ‘이 집부터 하자.’ 그들은 슬그머니 아이의 이불 끄트머리를 잡는다.

문장만 듣기에는 가슴이 철렁하는 얘기다. 검은 모자들의 뒷모습만 가득한 속표지까지는 그림도 무섭다. 면지의 시계들은 하나같이 한 시를 가리키면서 이 책의 유일한 청각적 이미지인 시곗바늘 소리를 들려준다. 그런데 본문 그림을 한 장씩 넘기는 순간 대반전이 일어난다. 검은 모자들의 입매는 다들 장난스럽게 웃고 있다.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는 눈썹은 반달처럼 다정하다. 검은 모자들의 비밀스러운 회합은 무엇이 목적이었을까? 수많은 검은 모자는 문틈으로 스며들어와 바람처럼 마루를 달려 아이의 머리맡에 선 뒤 아이가 걷어찬 이불을 살그머니 덮어준다.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곤히 잠든 누나와 아기의 이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외로운 할아버지의 이불을, 나라마다 돌아다니면서 초원의 천막과 찬 이글루와 아프리카 사막에서 누군가가 걷어찬 이불을 덮어준다.

이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어긋남을 통해서 절묘한 긴장을 일으킨다. 글은 무섭고 그림은 안 무섭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이야기를 듣는다면 심장이 쿵쿵거릴 것이다. 그러나 스탠드를 켜고 그림을 펼쳐보면 더없이 반짝반짝 아름답다. 그림책이 주는 불일치의 매력이 극대화된 이야기다.

다 읽고 나면 나도 검은 모자가 되어 어느 땅 밤하늘을 날면서 누군가의 이불을 덮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 무서워 밤마다 잠 못 드는 아이에게 딱 좋은 선물이다.

김지은 <어린이·청소년문학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