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목숨? 독불장군?… 드라마 작가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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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의 집’ 최현경 작가, 4회만에 하차
홍정은-홍미란 자매작가, 소재 바꿔 집필해도 무방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듯 방송가에서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다.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촬영을 진행하는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상 대본의 완성도가 작품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작가도 작가 나름’이다. 유명 작가의 경우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로 대본 집필부터 제작 방향까지 조율하지만, 신인이나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지 못한 작가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들에게 방송사는 말한다. “드라마 제작은 공동작업”이라고.

2일 KBS 2TV 주말극 ‘파랑새의 집’(사진)의 최현경 작가의 하차 소식이 전해졌다. 방송 4회가 끝난 시점이다. 50부작 중 10분의 1도 마치지 않았는데 이 드라마를 기획하고 집필하던 작가 대신 ‘내일도 칸타빌레’를 쓴 박필주 작가가 투입됐다.

‘파랑새의 집’의 4회 전국 시청률은 26%. 높은 수치지만 전작인 ‘가족끼리 왜 이래’가 43.1%로 끝난 것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크다. 한 방송 관계자는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웠지만 시청자 반응과 시청률이 저조해 내부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정확한 속내는 말할 수 없지만 중견 작가가 방송 초반 이렇게 하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S 드라마국 측은 “’가족끼리 왜 이래’의 1회 시청률이 20%였다. ‘파랑새의 꿈’의 시청률은 높은 편”이라며 “최 작가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하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인기 작가의 기세는 등등하다. ‘미남이시네요’와 ‘최고의 사랑’ 등 히트작을 낸 홍정은-홍미란 자매 작가는 5월 방송되는 MBC 수목극을 준비하며 지난달 아이템을 바꿨다. 당초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인연설’을 준비했지만 지난달 ‘제주도 개츠비-맨도롱 또？’으로 갈아탔고 현재 1부 대본만 완성됐다. 제작사 측은 “두 작품을 동시에 기획하고 준비해왔다. 평소 홍자매 작가의 집필 속도보다 빠른 편”이라고 밝혔지만 후반부로 가면 ‘쪽대본’ 촬영이 불가피하다. 홍자매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길 원하는 배우 강소라는 기획안에 상관없이 출연하겠다는 입장이고, 또 다른 배우들은 2부 대본까지 본 후 출연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복안이다.

MBC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기획안을 통째로 바꾼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홍자매 작가가 여러 성공 사례를 보여줬기 때문에 방송사도 믿고 맡기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3일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는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더 이상은 못 참아’의 서영명 작가가 “작가 교체 후 동의 없이 줄거리를 바꿨다”며 제작사와 방송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서 작가에게 2억86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드라마 제작 시 작가가 갖는 고유 권한을 인정한 셈이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결국 시청률 지상주의의 폐해”라며 “대본이 드라마의 뿌리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갑’인 인기 작가와 ‘을’인 비인기 작가에 대한 처우는 천차만별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한국 드라마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