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희진 제주지검장이 지난 2월 26일 제주시 남광북5길 제주지검 청사 접견실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한라산을 주제로 한 그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조희진 제주 지검장
2013년 12월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여성 검사장에 올라 화제를 모았던 조희진(53·사법연수원 19기)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올해 2월에 또다시 검찰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여성 최초로 지검장이 돼 제주지방검찰청의 수사를 총지휘하게 된 것. 지난 2월 26일 제주시 남광북5길 제주지검 청사에서 만난 조 지검장은 예상과 ‘달리’ 부드러웠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공판2부장·형사7부장), 고양지청 차장, 천안지청장 등을 거치며 ‘여성 1호’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갈아치웠던 조 지검장은 ‘남성화됐을 것’이란 선입견을 여지없이 깼다. 친절하고 부드럽게 여러 현안을 성의있게 설명했고, ‘여성’과 ‘검찰’을 주제로 한 다소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도 상당히 담백하게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솔직한 면모도 보여줬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인식도 여성가족부 공무원으로 착각할 정도로 잘 정리돼 있었다. 검찰 맏언니라는 부담을 늘 안고 지낸 25년간의 검사 생활, 공직자인 남편과 숱한 주말부부를 하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배양된 고민의 깊이가 반영된 듯했다.
―첫 여성 지검장이신데, 소감은 어떤가.
“검사장은 검사로서는 성별을 떠나 영광스러운 자리인 데다, 전체 검사 중에 약 25%를 점하는 여성 검사들은 물론 법조인을 꿈꾸는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 모두에게 여성도 검찰 고위직에 진출할 수 있다는 역할 확대의 가능성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는데 더없는 자부심과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제주지검장으로서 포부가 남다를 것 같다.
“제주도는 인구 약 60만 명이고 면적은 서울의 세배인데, 2006년부터 특별자치도로서 국제자유무역지구를 조성하게 됨으로써 외국인, 특히 중국인 관광객과 투자가 급증하는 추세고, 내국인들도 관광은 물론, 사업, 교육을 통한 왕래와 정착으로 인구 증가, 관광 및 투자, 개발 관련 사건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 자본이 부동산 투자 개발, 카지노 등 관광 사업에 진출하면서 경기 활성화가 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지역 주민들은 난개발로 인한 환경문제, 카지노 확대 등으로 인한 우범화를 걱정하고 있고, 이미 알다시피 민군복합항 해군기지 설치에 대한 대립과 갈등도 여전하다. 역사적으로 4·3사태 등을 비롯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전통을 유지하고 생존해 왔던 주민들인지라 지역적 특성이 강하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고, 전 국민이 사랑하는 제주의 환경과 전통을 보전하면서 국제자유도시로 도약하는데 검찰이 투명하고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활동과 안전하게 주민들이 지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중책을 맡아 책임이 무겁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 지검장이 1990년 2월에 서울지검에 임관했을 때 여검사는 한 명도 없었다. 유일한 여검사였던 조배숙(16·17·18대 국회의원) 인천지검 검사는 1986년에 검찰을 떠나 수원지법 판사로 전직했다. 그러나 25년 새 여검사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전체 검사 1998명 중 여성은 544명(27.2%)이다. 그렇지만 고검검사급(부부장검사) 이상 검사 601명 중 여성은 28명(4.66%)에 불과하다. 전체 비중에 비해 간부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여성 1호라는 타이틀을 많이 거쳐 오셨다.
“검사가 되면서 여성이라는 의미로 주목을 받으리라고 깊이 생각을 못했는데, ‘첫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인사 때마다 달게 돼서 솔직히 많이 부담스러웠다. 성별을 떠나서 업무성과로 인정받고 싶었는데, ‘첫 여성’이라는 타이틀만 매번 부각되니 부담이 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내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일을 열심히 잘한다’는 것은 공직자라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고, 그 외에 ‘나한테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주변에서 여성 검사들의 ‘롤 모델’이 돼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었다.”
―꼭 이루고 싶은 성과가 있다면.
“이제 검찰에서도 여성검사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 제주지검의 경우 남성 검사 10명, 여성 검사 7명으로 엇비슷하다. 바야흐로 여성이 검찰에서 역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검찰의 발전도 없는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여성 검사들은 남성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임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검사로서 일하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출산, 육아, 가사와 문화적 차이, 일에 접근하는 방법, 태도 등이 남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늘 여성검사의 롤 모델이라는 수식을 달고 지내왔는데, 여성 검사장으로서 말로만 롤 모델이 아니라 후배 여성들이 제대로 역량을 발휘해서 검찰조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여건, 시스템을 마련하고 싶다. 여성 검사장이라는 것 때문에 주위에서는 여성과 관련된 분야에서 역할을 해 줄 것을 많이 기대하고 있다.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아동폭력, 환경, 식품 사범을 비롯하여 부정부패 척결 등 국민들이 우려하는 분야에서 검찰의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다.”
―여성이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 적은 없었나.
“그렇다고 느낀 적은 많지 않다. 다만, 내가 1990년 검사 임관한 이래 10년간 후배 여성 검사가 10명 남짓이었다. 그 이후 조금씩 증가해서 현재 초임검사 임용은 여성이 절반에 가깝지만, 부장, 차장, 지청장 등 상위 직급의 여성이 매우 적기 때문에 여성들이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문화적 차이, 가사와 육아 등 양성의 사회적 차이에 따라 실질적인 역량 평가를 제대로 받기 어려운 구조라는 생각도 든다. 검사장 승진에서 두 차례 탈락했을 때, 후배 여검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희망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기도 했다.”
―피의자나 수사관 등이 여검사라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경우는 없었나.
“그런 건 없었는데, 1992년에 수원지검에서 계 사기 사건을 처리할 때 피해를 본 아주머니들이 ‘검사가 맞나’하는 의심스럽고도 마뜩잖은 표정으로 쳐다보더라. 또 부에서 검사들과 회식을 하면 제가 호스트인데,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이 꼭 저한테 밑반찬이나 수저를 나누라고 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후배 여검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의 여성검사 증가 추세로 보면 여성들이 검찰에서 역량을 발휘해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주인 의식과 책임감이 필요하다. 앞으로 검찰 시스템은 더욱 전문적인 영역으로 세분화, 발전되고 평생 검사제도가 정착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자리보다는 일 위주로 보람과 자기만족을 느끼는 것이 검사생활을 행복하게 오래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검사라는 직업은 타인의 생명, 신체, 재산, 명예 등에 대한 범죄를 다루는 직업인지라 검사 개인의 정의감, 소명의식, 올바른 가치관 정립 등이 중요한 것 같다. 여성검사들이 전문성과 실력을 배양해 범죄수사 등에 있어서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고, 정의감과 소명의식으로 비록 작은 사건이라도 최선을 다해 정성껏 해결·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출산, 육아, 가사 등으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고, 특히 검찰 내부의 인식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데 전적인 공감이 필요하다.”
―많은 여성 검사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여전히 특수, 공안 분야에서 중간 간부로 올라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우선 중간 간부 군에 속하는 여성 숫자가 매우 적다. 전국적으로 20명 이내고, 특수, 공안 분야 중간 간부 군에 속하는 여성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적다. 숫자가 적기 때문에 평검사 때 특수, 공안은 전담한 경험이 없거나 적어서 그 분야로 분류되지 못하는 것이 제일 문제다. 여성은 소수이기 때문에 평검사 때 형사부와 공판을 전담하고, 그중에서도 성폭력, 가정폭력, 소년, 지적재산권 등을 주로 다루게 된다. 이른바 특수, 공안, 강력 분야에서 제외된 경우가 많다. 물론 여성 검사 숫자가 증가한 지금은 평검사 중에도 특수, 공안, 강력 분야에 여성 검사들을 배치하고 있지만 아직 적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지난해 남성 검사들의 반 정도가 특수, 강력, 공안 등 특별수사부서에 배치된 것에 비해 여성들은 35명 중에 5명 정도가 배치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형사부, 공판부로 남성에 비해 그 비율이 매우 적었다.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특별부서에서 여성을 배치하는데 소극적이다 보니 그런 것 아닌가 싶다.”
―판사나 변호사에 비해 검사는 여성과 맞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공감하나.
“여성과 맞지 않다면 계속 여성검사 지원자가 느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 않나. 오히려 검사라는 직책은 상당히 꼼꼼하게 모든 것을 따져보고 점검하고 챙겨야 하는 일들이라서 여성들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고검에서 차장검사로 재직 시에 수도권 전체 검사들을 상대로 실적 평가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여성검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져서 일선 각 청에서 우수검사, 각종 표창 수상 후보자로 여성 검사를 추천한 경우가 많았고, 최종 추천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다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역시 여성의 수가 많아지면서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우수한 역량을 발휘하는 여성의 숫자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걸 실감했다. 다만, 여성들이 출산, 육아, 가사 등으로 일정 시기에 집중력이 분산되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에 많은 사건들을 최선을 다해 처리하는 데 힘들 수는 있다.”
이만하고 화제를 ‘검사 조희진’에서 한 아들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조희진으로 화제를 바꿨다.
―제주로 발령 나면서 주말부부가 불가피할 것 같은데 가족들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남편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이어서 세종시와 서울을 왕래하고, 아들은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저는 제주도에 있으니 가족 모두 떨어져 있는 셈이다. 한정된 기간인 만큼 제주도 생활에 전념하고자 가급적 주말에는 남편이 제주도에 내려오기로 의논 중이고, 어머니의 건강이 허락하시면 함께 내려와 지낼 것도 고려 중이다.”
조 지검장의 남편은 송수근 문화부 기획조정실장이다. 고려대 영문학과 78학번으로, 고려대 법대를 나온 조 지검장의 3년 선배다. 학교 다닐 땐 몰랐고, 검사로 임관한 뒤 부장검사의 소개로 만났단다.
―요즘도 일하는 여성의 육아 문제가 심각한데 육아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친정어머니께서 헌신적으로 육아와 가사를 맡아 해주셨다. 남편도 육아에 관한 한 나보다 훨씬 관심을 갖고 시간을 할애해 아들을 양육했다. 요즘은 남편이 요리, 장보기 등 가사 일까지 재미를 붙이고 있어서 집안에서 나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 남편은 같은 공직자여서 많은 조언을 구하는 제일 믿을 만한 친구와 같다.”
김세동 기자 sdg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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