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미국 3.0’ 시대의 한국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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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 국제부장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잘못된 가정에 입각해 세운 계획이다. 실패확률이 100%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해 세운 계획이 실패하는 것은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떨어지는 것이지만 그게 국가의 안보를 판가름하는 일이 될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박근혜정부 2년차 외교정책을 둘러싸고 안팎에서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통일·외교 부문은 그나마 다른 부문에 비해 나은 점수가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우선, 박정부가 통일대박론에 입각해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고 대북 제안을 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미 통일준비위원회와 어떤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통준위를 흡수통일을 위한 기구로 간주하고 대화 불응 방침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에서도 박정부의 통일 드라이브는 대북 대화 견인용이라기보다 대내용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더 심각한 것은 박정부의 외교전략이 미국은 쇠퇴하고 중국은 부상한다는 패러다임에 입각해 수립된 대미 거리 두기 및 친중 강화론이라는 점이다. 지난 2년간 박 대통령은 대통령당선인 대중특사에 이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출신을 주중 대사로 보내는 구애 외교를 펴왔다. 중국이 희망하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속전속결로 해결했다. 미국에 대해선 외교부 차관 출신 직업외교관을 주미대사로 보냈을 뿐 현안들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처리하지 않는 식으로 거리 두기 외교를 해왔다. 이 같은 기류는 미국 주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나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해 박정부 핵심인사들이 보여준 태도에 잘 나타나 있다. 두 현안 모두 여전히 미결정된 상태지만 전자에 대해선 회의적이고 후자에 대해선 호의적인 기류가 있는 게 사실이다.

박정부의 애매모호한 절충주의 외교는 글로벌 유일 파워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한다는 가정하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전제가 틀렸다면 박근혜 시대 한국외교는 잘못 가도 한참 잘못 가는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최근 펴낸 ‘팍스 아메리카나 3.0’에 따르면 미국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위기에서 벗어나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미국경제 회복에 의존하고 있고 미국 제조업은 물론 하이테크산업, 셰일가스 혁명 등 모든 분야를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면화하면서 팽배했던 중국 부상론 및 미국 쇠퇴론은 이제 사라지고, 팍스 아메리카나는 2차대전 이후의 1.0시대, 레이건 혁명 이후의 2.0시대에 이어 이제 3.0으로 버전업됐다는 게 아산정책연구원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중국 편향 외교는 잘못된 가정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의 외교정책이다. 대중 편향 외교를 바로잡지 않으면 제2, 제3의 웬디 셔먼 발언 파동이 나올 수 있다. 일본은 이참에 한국을 중국 편으로 몰아붙여 한·중 대 미·일 구도로 동북아 판을 새로 짜자고 워싱턴 설득 작전에 나서고 있다. 한국 외교가 대재난을 피하려면 하루빨리 올바른 정세 인식하에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