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단독]슈틸리케 “아들 떠나보낸 후… 어려운 환경 두렵지않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휴가를 마치고 지난 4일 돌아온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팬과 취재진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5 K리그 클래식 전북-성남의 개막전이 열린 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울리 슈틸리케(61) 축구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만났다. 스페인 알메리아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지난 4일 인천공항에서 귀국 인터뷰를 한 지 사흘 만이다. 감기몸살로 콧물을 훌쩍거리면서도 그는 기어이 약속대로 K리그를 찾았다.“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K리그가 강해야 한다. 또 유소년 선수를 잘 길러야 한다. ‘제2의 이정협’에 관해서는 앞으로 계속 K리그를 다니면서 찾아보겠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가끔은 그가 외국인인지 ‘토종’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누구보다 걱정하는 모습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에 한국에 처음 온 이후 이제 불과 6개월을 지낸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다. 언어도, 음식도, 문화도 여전히 낯설 텐데 수십 년간 한국 축구 발전을 고민해온 국내 축구 원로처럼 말한다. 이날도 그는 마치 K리그 홍보대사라도 된 듯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팬 사인회를 하고, K리그 시축을 하고, 관중석을 지키고 앉아 ‘옥석 찾기’에 몰두했다. 8일에는 전남-제주전이 열린 광양축구전용경기장까지 찾았다. 역대 외국인 사령탑 중에 이렇게 K리그에 관심을 가진 감독은 없었다. 진정성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말과 행동이었다.

◇선수로선 ‘완생’, 감독으로선 ‘미생’

슈틸리케,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을 “치밀하면서도 점잖고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축구대표를 지낸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지만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냈다. 주전 수비수로서 1977년부터 여덟 시즌 동안 3차례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최고 외국인 선수상을 4차례 받았다. 당시 동료로는 비센테 델보스케(65) 스페인 축구 대표팀 감독이 있다. 선수 시절 슈틸리케는 거칠었다.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저먼 팬저(German Panzer, 독일 전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지도자로서도 슈틸리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89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스위스 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후 독일 프로팀을 거쳐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독일 대표팀 수석코치,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그리고 코트디부아르 대표팀과 중동의 클럽팀을 거쳤다.

하지만 경력은 많아도 제대로 된 우승 경험이 없었다. 2015 호주아시안컵 준우승이 사실상 그가 이룬 생애 첫 타이틀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슈틸리케는 특유의 성실함과 진정성으로 인정을 받았다. 독일어, 스페인어, 불어, 영어를 써가며 선수들과 소통하려 애썼다.

“스위스 대표팀 감독 시절에 브라질을 이긴 날, 선수들과 같이 샤워를 한 적도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랬다.”

◇지도 철학, 솔선수범과 직언

이런 슈틸리케 감독의 이력은 평소 지도 스타일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는 솔선수범형 지도자다. 선수들보다 먼저 뛴다. 훈련장에 가면 직접 발걸음을 세어가며 훈련 장비를 하나하나 배치한다.

“나는 어떤 자리에도 대한민국 코칭 스태프의 대표로 나선다. 아시안컵을 통해 코치진,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들과 얘기하면서 그들이 돈 때문에 온 게 아니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코칭 스태프가 먼저 보여주지 않으면 선수들은 따라오지 않는다. 아시안컵에서 준우승했다고 해서 내가 다른 지도자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축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는 강직한 품성을 지녔다. 에기디우스 브라운 전 독일축구협회(DFB) 회장은 슈틸리케 감독을 고집스러운 지도자로 기억한다. 1998년 처음 독일 대표팀의 수석코치를 맡았을 때에도 슈틸리케 감독은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윗사람과 충돌하기도 했다. 당시는 소위 독일 축구의 암흑기였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8강 탈락, 200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끓어오른 민심을 막아내기 급급할 때 그는 유소년부터 챙겼다. 이때의 제자들이 바로 2014 브라질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31), 필립 람(32), 페어 메르데사커(31), 루카스 포돌스키(30) 등이다.

◇선수 발탁의 기준은 유연함… 모델은 토니 크로스

한국 대표팀 선수 선발에 있어서도 이런 원칙과 소신이 반영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나이와 출신, 기존의 평판을 뛰어넘었다.

“선수를 뽑을 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차두리는 35세에도 아시안컵에서 맹활약했다. 어리다고 잘 뛰지 못한다는 법도 없다.”

슈틸리케호 승선의 최고 요건은 ‘유연함’이다. 포지션의 유연성, 전술의 유연성이다. 공수 전환에 빠르게 대응하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 결국 슈틸리케호의 대표 얼굴이 됐다. 해외 선수 중에 ‘이상형’을 꼽자면 독일 대표팀 출신의 토니 크로스(25·레알 마드리드) 같은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미드필더의 정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슈틸리케 감독도 크로스를 극찬했다.

“크로스는 공격적인 10번, 전후방을 지원하는 8번, 수비형 미드필더 6번 등 항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규율과 준비된 피지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유연함을 빼놓을 수 없다. 선수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사미 케디라보다는 토니 크로스를 더 좋아하는 이유다.”

대표팀 중에는 바로 기성용(26·스완지시티)이 크로스에 해당한다. “내 생각에서 결코 바뀌지 않는 게 있다. 어떤 선수가 어디에 투입되든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전술을 운영하더라도 다 소화할 수 있도록 선수들이 준비돼 있으면 좋겠다.”

◇2008년 아들의 죽음, 축구 인생의 대전환

이 모든 건 2008년 초에 일어난 슈틸리케 감독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 바로 사랑하는 아들 미하엘의 사망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출전을 불과 2주 앞두고 코트디부아르 감독직을 사임했다. 23세의 아들 미하엘이 폐섬유종으로 투병하다가 끝내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2008년 1월 8일자 독일 디벨트에는 당시 상황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묘사돼 있다.

“나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노버의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의 아들과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새로운 장기 기증자가 나타나길 고대하지만 아들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하루빨리 수술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가슴이 찢어진다. 아내 도리스와 의논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얼마 후 슈틸리케 감독은 미하엘을 영원히 떠나보냈다. 아들의 죽음은 슈틸리케 감독의 삶과 축구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주위 환경이 어렵더라도 이젠 두렵지 않다. 아마도 그때 이후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축구의 목표, 슈틸리케의 꿈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하나다.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0위 안에 들고 2018 러시아월드컵 16강에도 진출하는 것. 그러나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를 떠올리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스페인 A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K리그는 강한 편이 아니다. 이 정도 수준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로 대표팀의 경기력을 얼마나 더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한국에서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이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는 것 같다. 당장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보다 장기적인 플랜에 있어서다. 줄곧 강조했던 한국 축구의 발전이다.

“한국 축구가 직장과 가정에서 많은 화제가 됐으면 한다. 이 사회에서 축구가 더 중요해졌으면 한다. 축구 경기중계가 중간에 끊어지는 불상사가 없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선수 육성이나 K리그의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 대표팀과 K리그의 선순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게 내가 한국 축구에 남기고 싶은 것이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