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불참하고… 음복만하고… 지난해 12월 10일 제주 삼성혈에서 열린 탐라국 고·양·부 삼성(三姓) 시조를 모시는 ‘건시대제(乾始大祭)’에서 원희룡 제주지사를 대신해 박정하(맨 왼쪽) 정무부지사가 초헌관을 맡아 제례 봉향을 하고 있다. 원 지사(작은 사진)는 이날 제사 후 음복행사에만 참석했다. 뉴시스
탐라때부터 하던 유서깊은 祭 ‘당연직 초헌관’조례에도 거부
기독교 신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12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라산신제’에서 제관직 수행을 거부했다. 지난해부터 벌써 3번째 있는 일이다. 개인종교와 공인(公人)의 의무가 충돌할 때 무엇이 우선할까.
한라산신제는 탐라국 시대부터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열렸던 유서 깊은 제례의식. 일제 민속문화 말살정책으로 봉행이 중지됐다가 2009년 지역주민들에 의해 부활했다. 2012년에는 제주도가 직접 나서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행사 주관도 제주특별자치도로 격상했다.
조례는 조선 시대 제주 목사가 직접 봉행한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도지사를 ‘초헌관’ 역할의 당연직으로 지명했다. 단순한 종교적 제례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무사안녕과 도의 발전을 기원하는 대표적 문화축제 차원이다.
그러나 원 지사는 이처럼 유서 깊은 관습적 제례를 ‘종교적 신념’을 고집하며 거부했다. 40여 분가량 행사시간에 늦게 참석함으로써 직접 주관 행사에 불참했다는 비난은 편법으로 피했다.
하지만 제주도 일부 주민들은 도지사라는 공인이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공식행사를 거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교분리 원칙을 선언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정치 지도자는 국민의 대표로서 모든 종교에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인적 신념은 공인의 의무를 다한 뒤 실천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원 지사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제주지역에서 진행되는 제례를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도 고양부(高梁夫) 삼성(三性)시조를 모시는 ‘건시대제’를 앞두고 초헌관을 맡겠다고 약속했다가 막판에 제관직을 거부했다. 지난해 열린 ‘한라산신제’에도 초헌관으로 집전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정무부지사가 대신했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한라산신제를 제주도에서 주관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큰 원칙은 변함이 없으나, 잔을 제단에 올리는 등 행위가 도지사의 종교적 신념과 충돌하다 보니 부득불 초헌관 역할을 다른 사람으로 대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태옥 한라산신제 봉행위원장은 “(조선 시대에도) 제주 목사가 직접 봉행해온 오랜 전통을 갖고 있고 전임 우근민 지사도 직접 제례를 집전한 행사인데, 유독 원 지사만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행사를 외면하는 처사는 전임 지사의 공적을 함유한 행사에 참석하기 싫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는 게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제주 = 박팔령 기자 park8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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