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권리’ 잃어버린 한국 어린이들… ‘아동 예산’ 도 OECD 하위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동의 놀 권리 등을 규정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어린이들이 가방을 메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나라 아동들이 학업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연구결과만 보아도, 우리나라에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은 11일 발표된 보건복지포럼 최근호(2월호)의 ‘한국 아동의 주관적 웰빙수준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언급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지난 2013년 발표한 ‘부유한 국가 아동의 주관적 웰빙 조사’ 결과와 같은 지표를 한국 아동들에게 적용해 보니 국내 아동의 학업 스트레스 지수는 50.5%로, 유니세프 조사 대상 국가인 29개국과 비교해 볼 때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동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낮추지 못한다면 유엔아동권리협약 불이행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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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아동권리협약 54개조 =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을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보고 이들의 생존, 발달, 보호에 관한 기본 권리를 명시한 협약이다. 이 협약은 지난 1989년 11월 20일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에 따라 유엔에 가입해 협약에 비준한 193개국은 5년마다 어린이인권 상황에 대한 국가보고서를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한국도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 지난해로 비준 25주년을 맞은 바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총 54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행사항을 제외하면 42개 조항으로 간추려진다. 아동에 대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비롯해 이름 및 국적을 가질 권리, 교육받을 권리, 적절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 충분히 쉬고 여가를 즐길 권리, 고문 및 형벌 금지, 불법 해외 이송 및 성적 학대금지 등이 명시돼 있다.

◇잊힌 한국 아동의 ‘놀 권리’ = 그러나 한국은 2011년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 4차 국가보고서 심의에서 아동권리협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며 80여 개의 이행과제를 권고받았다. 이 가운데 핵심적인 것이 바로 아동이 겪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앞서 2002년 한국의 2차 정기보고서에 관한 위원회의 최종견해에서도 ‘아동이 겪는 고도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교육정책 검토’를 촉구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20일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유엔아동권리협약 채택 25주년을 맞아 한국 어린이의 놀이 현황을 조사한 결과, ‘놀이와 여가가 자신의 권리’인 것을 모르는 어린이·청소년이 50.4%로 절반 가량이나 됐다. 현재의 놀이와 여가에 불만을 느끼는 경우 학업 부담(25%)과 부족한 시간(21%), 부모님의 이해 부족(18%) 등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 다수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놀이와 여가를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협약 제31조 ‘여가와 놀이’ 조항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낮은 아동인권 인식은 고질병 = 한국은 아동인권 개선을 위한 기초인 ‘아동인권 감수성’이 낮은 것이 고질병으로 지적돼 왔다. 일반 대중 그리고 아동 관련 직업 종사자 사이에서 협약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것이다.

2012년 세이브더칠드런의 ‘예비교사의 아동인권에 대한 인식 및 인권교육 실태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교육대·사범대 학생 74%가 아동인권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78%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응답했다.

유 본부장은 “아동 관련 종사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인권 교육을 실시하고 협약의 대중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아동을 위한 예산 할당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고 전체 세출 예산에서도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동 관련 예산을 OECD 국가와 비교하면 노인·장애인 분야 지출은 3∼4배가 적은 데 비해 아동·가족 분야 지출은 16배나 적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법률 절차나 사회적 태도 등 아동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할 때 아동의 견해가 반영되지 않는 문제 역시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4년 학생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칙의 제·개정 과정에 학생의 의견이 잘 반영되느냐의 질문에 70.3% 학생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선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사업팀장은 “아동 정책을 펼 때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조인 ‘아동 최선의 이익’을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국제인권기준인 유엔아동권리협약을 통해 우리나라 아동의 인권 현실을 조망하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서둘러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