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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5년 03월 13일(金)
“김영란法, 인간 본성 이해 부족… 출발부터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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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지난 9일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사색하지 않으면 학문이 체계가 없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오류나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라는 공자 말을 인용하며 후배 법관들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권성 前 헌법재판관

4년 전 당시 언론중재위원장을 맡고 있던 권성(74) 전 헌법재판관이 전화를 했다. 1996년 12월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재판을 취재하면서 법정에서 권 전 재판관을 본 적은 있지만 이후 15년 동안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통화를 한 적이 한번도 없어 의아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점심식사나 한번 하자’고 요청하기에 얼떨결에 약속을 잡았다.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마주한 권 전 재판관은 최근 근황에 대해 묻더니 조심스럽게 1997년 기자가 썼던 기사를 얘기했다.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경기고 출신 법조인들이 야유회에서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했는데 당시 고법부장이었던 권 전 재판관 앞에 있던 판사가 “이회창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를 외쳤고 다음으로 건배사를 한 권 전 재판관이 “1심 판결(앞사람의 건배사)을 인용하고”라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앞서 건배사를 한 판사가 맡은 유명 사건의 항소심을 권 전 재판관이 맡은 적이 있어 해당 기사는 법조계에서 꽤 관심을 모았다.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기자에게 권 전 재판관은 “그 기사가 보도된 이후 국정감사나 헌법재판관 청문회 등에서 수차례 ‘정치판사’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언젠가는 그 기사를 쓴 기자를 만나 당시 상황을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오찬 제의의 배경을 설명했다. 문제의 기사가 보도된 당시 어떤 형태의 항의 표시도 하지 않았던 권 전 재판관이 15년 만에 하는 해명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신은 원래 공·사석에서 정치적 발언을 잘 하지 않지만 당시 동창모임이라 판을 깰 수도 없어 ‘1심 판결 인용’이란 은유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로 법조인이 오랜 세월 가슴에 담아온 해명을 듣는 기자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권 전 재판관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이유는 그의 말과 행동이 부드럽고 진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사실 그를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은 그를 강성 법조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는 40여 년의 법조인 생활을 통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서 소신 있는 판결을 해왔다. 때로는 전 국민의 비판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밝혔고 때로는 보수 성향이란 평가를 재고하게 만드는 전향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정치판사라는 비판과 달리 법조인으로서 외길을 걸었고 이젠 현장에서 한발 물러서 있지만 여전히 소신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외유내강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권 전 재판관을 지난 9일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만났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의 위헌 논란이 뜨겁다.

“공직을 떠난 이후로 거의 신문도 TV 뉴스도 안 본다. 세상일에서 관심이 멀어지더라. 그러다 보니 김영란법 내용을 잘 몰랐다. 그런데 박 부장이 온다기에 법을 한번 훑어 봤다. 법률적 견지에서 위헌이다 아니다 말할 자신이 없다. 다만 우선 이런 건 입법할 대상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굳이 필요하다면 기존 법률을 잘 개정해서 처리하면 되지 하나의 방대한 법률로 입법할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위헌 여부를 떠나 이 법이 과연 실효성 있는 법으로 살아남겠느냐는 거다. 공무원에게 신고 의무를 부여했는데 신고가 제대로 되겠나. 신고 안 하면 공무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 아닌가. 공무원에 대한 비판이 많다. 공무원들이 잘못한 것도 많지만 광복 후 우리나라가 이렇게 안정된 데는 공무원이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박봉에 시달리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 공무원들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공무원 배우자가 금품을 받으면 배우자를 신고하도록 돼 있다. 이게 적절한 법인가. 배우자가 좀 철저하지 못해 선물을 받았다고 신고해야 하나. 수십 년 같이 산 부인을 신고해서 망신시키고 이래서 되겠나.”

―법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법 만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어차피 욕망의 화신이다. 어떻게 모든 욕망을 법으로 다스리나. 출발부터 잘못됐다. 욕망을 성취하려는 행동이 정말 잘못돼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법으로 제지하는 거지 모든 욕망을 다 제지할 수 없다. 다소 성격은 다르지만 간통죄도 성적 욕망에 관한 것인데 법으로 제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지 않았나. 그럼 부정부패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건 형법상 뇌물죄, 배임수재, 변호사법 위반죄 등의 법을 적절하게 개정해 처리하는 것이 첫째 방법이다. 둘째는 공직자도 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과 하급 공무원은 비교가 안 된다. 권력을 가진 분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절대군주국이나 권위주의 정권에서 부정부패를 해결한 사례가 없고 오히려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정부패 문제가 해결됐다는 점이다. 즉 법과 제재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 부정부패를 해결한 것은 권력의 행사과정이 투명하고 감시를 받기 때문이다. 인허가를 포함,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분쟁이 자주 일어나는 분야에 대해서는 청문 절차나 이의제기 절차를 확대해 관련 행정조치나 결정이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민주적 방식을 채택해야 부정부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지난해 1월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사건 소송대리인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을 때 언론중재위원장에 재직 중인 데다 건강도 조금 안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맡았는데.

“당시 통진당 인사들이 용인하기 어려운 활동을 많이 해서 우려가 컸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이도 많고 능력도 부족하지만 나라도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당시 보수 진영에서조차 이석기 통진당 의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난 뒤에 해산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특히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해산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결국 통진당을 합법화해 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뒤따랐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다루는 문제에는 차이가 있다. 정당 해산심판은 헌재의 고유한 영역이다. 더구나 법무부가 제공한 자료를 보니까 사실(fact) 문제에 있어서도 틀림없이 해산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자 해산의 세 주역으로 권 전 재판관과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고영주 변호사, 법무부 위헌정당대책 TF팀장을 맡은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을 꼽는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권 전 재판관은 ‘결의에 찬 소수자 세력이 오만과 안일에 빠진 다수를 쓰러트리는 일은 때때로 일어난다’ ‘러시아 10월 혁명 당시 레닌은 결정적 시기가 왔다고 판단되자 다수당 카렌스키의 합법정권을 뒤집고 정권을 장악했다’ ‘통진당의 전민항쟁은 폭력혁명을 당의로 포장한 슈거코팅에 불과하다’는 등의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란 사상과 이념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다. 통진당 해산 결정은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이념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이제 상당히 성숙된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했다. 따라서 너무 엄격하게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면서 자기가 서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세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폭력혁명 내지 그와 유사한 방법론을 추구하는 것은 안 된다. 둘째, 계급투쟁은 안 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수용해야 하는데 특정 계급을 옹호하면서 특정 계급은 배격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셋째, 적과의 동침은 안 된다.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적대세력과 연계해서 활동하는 사람은 안 된다. 통진당은 이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본다.”

―실제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 사건은 특정인의 돌출 행동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적 혼란의 표출이라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동감한다. 미국대사 테러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념 문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심지어 방관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진당 해산 결정은 그런 의미에서 경종을 울린 것이다. 좀 더 일찍 견제하고 명확하게 기준을 설정했더라면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좀 거칠게 말하면 우리 사회와 우리 정부를 너무 얕잡아 봐서 생긴 일이다. 그러니까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좌파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멋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올바른 방향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하나의 멋이나 지적유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번 사건의 하나의 원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현실 정치와 국제관계가 얼마나 냉혹한지를 직시하고 위험한 지적유희를 재고했으면 한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 가치 판단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사법부에서 그런 우려를 자아내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 판사들이 개인의 이념적 소신과 법관의 양심을 혼돈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건전한 이념과 양식을 갖고 있어 특별히 염려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판사 수가 워낙 급격하게 늘다 보니 우려가 없진 않다. 헌법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규정돼 있다. 양심이 뭔가. 헌법과 법률이 지향하고 목표로 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판사는 자신의 생각이 보편타당성이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인터뷰에서 ‘판결은 판사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법관에 재직할 때 배석이나 후배 법관에게 하던 이야기가 있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사색하지 않으면 학문이 체계가 없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오류나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공자님 말씀이다.”

―세간의 비판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법에 충실한 판결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요즘 어떤 판결은 여론을 너무 의식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별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면 좀 심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게 뭘 의미하나. 과거엔 권력기관의 압력이 들어올 때 굽히지 않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면서 권력이 다양화됐다. 많은 권력 중 하나가 여론이다. 여론에 휘둘리거나 영합한다는 느낌을 주는 판결이 나와서는 안 된다.”

권 전 재판관이 법에 충실한 판결을 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은 사건이 있다. 고법에서 민사재판을 담당할 때 맡은 ‘친일파 후손 땅 찾기’ 사건이 그것. 그 판결 때문에 권 전 재판관은 지난 2012년 독립운동가단체들이 선정한 ‘신(新)을사오적’에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2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친일파 후손 땅 찾기 사건이란 이완용의 증손자가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동생이 위임장을 위조해 팔아넘긴 땅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낸 사건. 1심에서 대리계약의 효력을 따져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사건을 항소기각했는데 권 전 재판관은 친일파 땅 찾기의 길을 터준 ‘원흉’으로 몰매를 맞았다.

―1심 판결을 파기한 것도 아닌데 왜 여론의 표적이 됐나.

“1심에서 이완용 증손자가 승소했고 상대가 항소를 했다. 그냥 1심 판결이 잘됐다며 항소기각을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항소한 쪽에서 워낙 많은 주장을 해서 분명하게 이치를 설명해 줘야겠다고 했는데 그 설명 때문에….”

―설명의 요지가 뭔가.

“우선 아무리 이완용 재산이라고 해서 먼저 보는 사람이 차지하면 되겠나. 그래선 안 된다. 국가가 법을 만들어 몰수를 하든지 해야지 아무나 보는 사람이 임자란 식은 곤란하다. 둘째는 문제의 땅이 제3자에게 넘어갔는데도 무조건 돌려주라고 하면 선의의 제3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이 판결을 위해 배석들과 엄청나게 공부했다. 먼저 승전국이 패전국 국민의 재산을 가져간 사례가 있는지를 조사했다. 미국이 일본에 승리했는데 일본 국민 재산을 가져갔는지,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알사스 로렌 지방을 가져갔는데 해당 지역 독일인의 사유재산을 압류했는지. 그런데 그런 사례가 전혀 없었다. 적어도 근대국가에 와서는 승전국이 패전국 국민의 사유재산을 몰수한 전례가 없었다. 다음으로는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이 있었는데 그 법에 의해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한 일이 있는지도 조사했는데 역시 사례가 없었다. 그리고 그 법은 2∼3년 만에 폐지됐다. 이어 이완용이 귀족 칭호를 받았는데 혹시 당시 법률에 의해 일본 사람으로 취급받았는지를 조사했다. 일본 사람 재산이라면 국가에 귀속된다. 그런데 일본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결국 친일파 재산이라도 법에 의하지 않고는 몰수할 수 없다는 법리를 확실히 하면서 친일파들이 땅 찾기 소송에 나섰고 그 결과 비난의 표적이 된 거군요.

“상당히 시달렸지만 그게 판사 하는 보람 아니겠느냐. 사실 당시 판결을 한 뒤 사무실로 찾아온 법조 출입 기자들에게 내용을 다 설명했는데 기사는 ‘이완용 편 들어주었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 기사를 바탕으로 서울대 문리대 신용하 교수가 신문 칼럼을 통해 대한민국에 이런 판사가 다 있다고 공격을 했다. 조순형 의원은 참 합리적인 분이셨는데 국정감사에서 ‘권 부장판사는 올바른 사람이란 평가를 듣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따위 판결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다들 판결 내용을 정확히 모르고 한 것이지만 어떡하겠나. 판사는 판결로 말하는 거니까. 그래도 대법원에서 내가 한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그리고 판결문에 친일파 재산환수를 위한 법을 빨리 만들라고 썼는데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고법부장과 서울행정법원장, 헌재재판관 등 핵심 고위직을 두루 거치는 등 법조계 주류에 속했는데 소수 판결을 많이 했다. 특히 2001년 헌재에서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내려졌을 때 9명의 재판관 중 혼자 위헌을 주장했다.

“인터뷰하러 온다기에 당시 결정문을 다시 읽어 봤는데 제대로 썼구나 생각했다. 남녀 간 애정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형이하학적 측면에서 계약관계고 형이상학적 측면에서는 애정과 신뢰의 관계다. 형이하학적 계약으로 볼 때 간통을 했다는 것은 계약 위반이다. 민사법적으로 계약 위반에 대한 제재는 계약관계의 해지와 손해배상 두 가지로 하지 형사적 처벌을 할 근거가 없다.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애정은 마음의 문제고 신뢰는 정신의 문제다. 마음과 정신의 문제를 국가권력이 강요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주성은 헌법이 보호해야 할 불가침의 권리다. 그런데 간통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공개적인 모욕 주기다. 이미 밝혔듯이 공개적으로 모욕 주기할 근거가 없고 예방적 효과도 없다. 더구나 간통은 대부분 애정과 신뢰가 깨진 뒤에 발생하는데 국가가 형벌을 주면서 간통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위헌 결정이 나온 걸 보고 상당히 안도했다.”

―12·12 및 5·18사건 항소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량을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해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워낙 국민들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어서 굉장히 부담이 컸다. 더구나 1심에서 재판 진행 절차와 관련해 이견이 많아 재판이 지연되는 바람에 항소심 심리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검찰과 피고인 변호사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역사적 사건인 만큼 신청하는 증인은 모두 신문하겠다. 그러니 중복된 질문을 하지 말고 중요하지 않은 증인은 빼라’고 요구했고 쌍방 합의하에 증인신문 일자를 포함, 신문기일을 확정했다. 그래서 짧은 시간 내 증인신문을 끝낼 수 있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구인장을 발부해 법정까지 모셨는데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결국 신문을 하지 못했다. 문제는 결국 양형인데 1심에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당시 배석들과 사형은 안 된다고 합의를 봤다. 피로써 피를 씻는 정치보복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고 그 역할을 우리가 한다는 데 공감했다. 많은 비판을 받겠지만 그 비판은 우리가 감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왕이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이유를 잘 써보자고 고심했고 그 결과 ‘항장불살(降將不殺·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이란 문구가 나왔다. 다행히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광주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시던 홍남순 변호사가 재판이 끝난 날 오후에 전화가 왔다. 나는 모르는 분인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느냐, 용기가 놀랍다’고 하시더라.”

―당시 저도 법조기자로서 취재를 했는데 사법적으로는 사형을 확정하고 정치적으로 사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정권이 사면을 했다면 엄청난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수 있고 마찬가지로 대법원에서 감형을 했다면 사법부 전체가 큰 부담을 느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그런 것을 의도하거나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정치권의 부담을 많이 덜어 줬고 시국 안정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골목성명’을 발표하는 등 12·12 및 5·18사건 수사에 적극적으로 저항했고 2000억 원대의 추징금도 대부분 내놓지 않는 등 ‘항복’했다고 볼 수 없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항복했다는 것은 6·29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쿠데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체제의 탄생을 가져왔다는 의미였다. 결국 2년 만에 사면이 됐는데 적절하지 않게 사면권이 행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사법부에서 상고법원제를 추진 중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대법관들의 재판 업무가 지나치게 과중한 것은 사실이고 어떤 게 올바른 해결책인지는 누구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대법원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상고법원은 미봉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역시 정면돌파를 하는 게 맞다. 상고허가제를 철저하게 하든지 독일식으로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든지 해야 하는데 우리 국민 정서상 대법관 증원이 해법이 아닌가 한다. 대법관 수를 늘리면 대법원의 권위가 약화된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대법원이 올바로 기능하면 신뢰를 얻게 된다. 나도 젊었을 때 대법원 행정처에 있으면서 상고허가제 정착 실무에 관여했다. 국민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재판제도도 결국 국민의 생각이나 의식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국민들은 경륜이 있는 법관에게 재판을 받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있고 사법부는 그것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

인터뷰 = 박민 사회부장 min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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