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해지는 현대 정보전>정보는 총알… 美·日·中·러 소리없는 ‘한반도 총격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조연수 기자 choys@

중국의 경제적 패권 급부상 차단하려는 美와 격돌 조짐

“국정원 적극성 잃어버렸다” 이병호 신임원장 우려 표명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을 기본 축으로 하고 주요 국가들이 국익 사수를 위해 다양한 정보전력 강화에 앞다퉈 나서면서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21세기 현대사회는 가히 정보국력 시대라는 말을 실감케 할 정도다. 정보는 물리적인 전쟁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경제영역, 심지어는 사이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총알’이다. 중국 병법서인 손자병법 ‘용간(用間)’ 편에 ‘무소불용간야(無所不用間也)’라면서 “간첩이 활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 표현이 딱 들어맞는 셈이다.

특히 한반도는 미·중 세력이 격돌하는 중간지대로 변모하면서 치열한 정보전장이 되고 있다. 서해 해상·영공은 미·중 정찰기와 잠수함이 서로 넘나드는 혼전 지역이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이 반발하는 것도 미·중 간 정보전과 깊이 연관돼 있다. 그런데도 미·중 사이에서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정보력 수준은 갈 길이 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이 지금 적극성을 잃어버렸다”(16일 국회 인사청문회)고 우려를 표명하고, “국정원은 국가방위의 최일선에서 정보활동을 해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19일 취임사)고 강조한 이유다.

◇각국은 지금 전방위 정보전쟁 중=정보전의 성격이 질적으로 바뀐 계기는 9·11테러다. 이후 국가 대 국가를 넘어선 다양한 유형의 테러·폭력이 등장하면서 정보기관은 국가안보·안전의 최첨병이 되고 있다. 1·2차 대전이 진지를 중심으로 싸우는 소모전, 중동전쟁이 기계화부대와 항공기를 앞세운 기동전이었다면 2003년 이라크전은 사이버전으로 상징되는 대표적인 정보전 사례다. 1991년 걸프전에서 선보였던 심리전·전자전·지휘통제전도 정보전 유형으로 분류된다. 정보전(IW·Information Warfare)이 2000년대 정보혁신 이후 새롭게 국제분쟁 개념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특히 사이버전은 21세기의 가장 특징적인 정보전 유형이다. 지난해 10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희화화한 영화 ‘인터뷰’ 제작사인 소니픽처스가 해킹당한 게 대표적인 최근 사례다. 미국이 공식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인터넷망에 대한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2011년 이란 핵시설의 원심분리기 1000여 개를 파괴한 스턱스넷(컴퓨터 바이러스) 공격도 미국·이스라엘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등 민간 영역도 정보전을 피할 수 없다. 미국 특수전 사령부(SOCOM)는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무역·금융·생태·심리·마약·네트워크·첨단기술·경제원조·국제법 분야에서 미국을 공격하는 하이브리드(복합형)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중국과의 사이버 및 경제스파이 전쟁으로 입은 지적 재산권 피해가 5000억 달러(약 564조 원)에 달한다는 추산도 나온다.

◇한반도는 사활을 건 전장=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미·중·일·러 등 4대 강국의 영향력이 교차하는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정보전에서도 중요한 길목이다. 특히 중국이 경제적 급부상과 함께 역내 패권국으로 발돋움하려고 하면서 그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미국과 한반도에서 격돌하려는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정보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이 서해 상에 미군 항공모함 진입을 극구 반대하는 것도 항공모함에 탑재된 정찰기가 반경 1000㎞의 정보를 탐지하면 중국 연안의 병력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발하는 것도 X-밴드 레이더(AN/TPY-2레이더)의 가공할 정보 탐지력 때문이다. 대신 중국은 2013년 방공식별구역(ADIZ) 확대를 선포하면서 미국에 맞불을 놓기도 했다.

여기에 남북 간 정보전도 만만치 않다. 현재 한·미 양국은 미국이 북한 핵시설과 미사일 발사장을 감시하는 사틴트(SATINT·위성정보)·이민트(IMINT·영상정보) 등과 같은 테킨트(TECHINT·기술정보)에 주력하고, 한국은 휴민트(HUMINT·인적정보)에 집중하는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전통적인 간첩 및 방첩 활동 외에도 사이버전이 급부상하면서 정보당국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2009년 7·7 디도스 공격부터 최근 한국수력원자력 원전 설계도 해킹 사건까지 일련의 해킹 사건 배후에는 북한이 있다는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실제로 북한은 인민군 정찰총국 산하에 ‘전자정찰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5900여 명의 사이버 부대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