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폭력불감증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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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 / 논설위원

우리 사회의 폭력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만연하는 듯하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폭행, 학교와 군(軍) 내부의 폭력, 대학교수들의 성(性) 갑질, 직장에서의 성희롱, 가정폭력, 노인 학대 등으로 인생의 전 사이클이 폭력 위협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충격적인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 이후에도 엽기적인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폭력 무감각증’이라는 중병(重病)을 앓고 있다는 방증이다.

TV를 보다가 숨이 콱 막히고 가슴이 섬뜩해지는 뉴스를 접할 때가 있다. 공군의 한 전투비행단 소속 A 상병이 지난해 10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동기 병사를 생활관에서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성추행까지한 혐의로 최근 법정 구속된 사건이 그것이다. 동기 병사에게 콜라 1.5ℓ를 강제로 마시게 하고 자신의 인후통 치료제 용도로 쓰이던 가글액을 억지로 삼키게 했다니, 어이가 없다. 놀라운 것은 지난해 10월이면 윤 일병 사건을 두고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면서 온 병사들이 치를 떠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유사한 폭행 사고가 반복됐느냐는 점이다. 군의 병영문화 개선이 말의 성찬에 그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병사들의 폭력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서울의 한 야구 명문고의 가혹행위도 충격적이다. 3학년 선배가 지난 1∼2월의 대만 전지훈련 중 알몸 상태인 신입생의 엉덩이를 야구방망이로 때렸고, 점심 도시락으로 나온 쌈밥 대신 나뭇잎에 밥을 싸서 먹게 한 뒤 토하면 다시 먹였다고 한다. 심지어 옷을 벗게 한 뒤 성인 영화를 따라 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훈련임을 내세워 후배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관행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스포츠계의 폭력은 영원히 근절되기 어렵다. 갑질 폭력에 당하고 나중에는 이를 후배에게 되갚는 청년들은 타율의 문화에 길들여지기 마련이고, 자기 주도성과 자신감까지 잃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폭력 불감증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엽기 폭력의 확산은 청소년 언어문화의 황폐화와도 무관치 않다. ‘설망어검(舌芒於劍)’은 혀가 칼보다 더 날카롭다는 말이다. 사실 언어폭력이나 신체폭력은 모두 사람의 심신을 날카롭게 찌른다.

2000년대 이후 조폭 모티브가 영화의 흥행코드가 되면서 청소년들 사이에서 욕설과 비속어를 쓰는 강도가 크게 높아졌다. 한 배우는 최근 개봉된 영화에서 자신의 대사 절반이 욕이었다고 털어놨다. ‘퍽퍽(신체폭력)’ 대신 ‘톡폭(카톡 폭력)’이라는 말이 나오고, 카톡 대화방에서 단체로 한 학생에게 언어폭력을 퍼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갈수록 지능화·엽기화하는 군과 학교 등에서의 폭력 유형 변화에 걸맞은 맞춤 대응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군과 학교 등에서 폭력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토양을 바꿔야 한다. 학교가 아닌 학원, CCTV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 카카오톡 등에서의 신종 학교 폭력을 없애기 위한 현장 교사들의 노력도 절실하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폭력을 저품질 권력, 지식을 고품질 권력으로 분류한 바 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고품질 권력인 인문학적 성찰의 힘을 키워야 저품질 권력인 폭력을 몰아낼 수 있다.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