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기자의 컬처 톡>물, 기억하고 또 노래하기 위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올봄, 가장 기대하는 두 편의 공연을 소개합니다.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선보이는 ‘델루즈: 물의 기억’(4월 16∼23일·연출 제러미 나이덱)과 지난 4일 개막한 서울연극제의 경연작 중 하나인 ‘물의 노래’ (5월 3∼9일·연출 김국희).

‘물의 기억’은 호주 시인 주디스 라이트(1915∼2000)의 ‘홍수’를 토대로, 2011년 호주 브리즈번 대홍수의 아픔을 위로합니다.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물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특별한 대사 없이 소리와 몸짓으로 전달합니다. 여기서, 물은 ‘파괴’에 가깝습니다. ‘물의 노래’는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 속으로 들어갑니다. 재앙의 불화살이 수많은 조선인을 향한 가운데, 일본인 우동집 주인이 조선인 가족을 우물에 숨겨주는 이야기. 참혹한 역사를 일본인의 눈으로 그린 이 연극에서 물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지요. 물이 상징하는 바는 각각 다르지만, 두 작품은 어떤 기억이 떠오르게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상실의 아픔’….

세월호 1주기. 16일을 전후해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콘서트, 연극, 포럼 등. 지난해 긴박하게 취소된 축제들도 추모 형태로 속속 부활하고 있고요. 앞선 두 공연은 세월호를 다루진 않습니다. 그러나 잊어지는 죽음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제겐 그 어떤 행사보다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러니까 두 작품을 보는 건 저만의 추모 의식인 셈이지요. 그런데, ‘물의 노래’가 올려질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 오는 13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문을 닫을지도 모릅니다. 공연이 예정된 기간.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3일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에 임시 휴관을 통보했습니다. 연극 자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유는 무대 구동부 이상에 따른 긴급 점검. 3편의 공연이 무산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공연장의 안전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예위의 행정 절차와 태도에는 분명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서울연극협회는 공문이 개막 하루 전에 날아온 것과, 그동안 대관 계약을 차일피일 미룬 점, 구두 약속 관례를 깨고 일부 공연(물의 노래·청춘, 간다·6.29가 보낸, 예고부고장)의 티켓 판매 중단을 요청한 것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문예위는 지난해 대관 심사에서 36년간 지속된 서울연극제를 탈락시켜 논란이 됐는데요. 파행위기가 계속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일각에선 ‘보복성 조치’라는 말까지 나도니까요.

박장렬 연극제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혼란과 의심이 없도록” 문예위의 적극적인 해명과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오랜 전통의 연극 축제가 ‘기싸움’으로 얼룩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불어 저만의 조용한 ‘추모제’도 제대로 지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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