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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4월 17일(金)
미국을 읽으려면 그녀를 먼저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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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선택들 / 힐러리 로댐 클린턴 지음, 이형욱 옮김 / 김영사

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 / 조너선 앨런·에이미 판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860쪽과 504쪽. 상당히 두껍다. 하나는 힐러리 클린턴 본인이 쓴 책이고, 하나는 정치 전문기자가 쓴 책이다. 두 책 모두 지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에게 패배한 날로부터 시작한다. 일종의 ‘적과의 동침’일까, 오바마 정부에서 그녀가 국무장관으로 활동할 때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에는 물론 마지막 페이지가 있지만.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현실이 움직였다. 지난 12일, 힐러리가 오바마의 뒤를 이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가기에, 이 책들은 ‘미래의 세계 권력’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자 일종의 전략 지침서가 되어 버렸다.

지난 20년 동안, 힐러리는 손을 들고 발을 내딛는 사소한 행동까지도 늘 세계 여론의 관심사였다. 그의 정치인생 전반부 대부분은 ‘세계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면서, 또한 역대급 스캔들의 당사자로서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남편 클린턴은 그녀의 빛이자 그림자였다. 언제나 남편의 후광을 받아 빛났기에 그녀는 주연이기보다 조연이었고, 어마어마한 정치적 자산은 동시에 청산해야 할 빚더미로 남았다.

대선 출마에 맞춰 세심한 고려 끝에 출간되었기에 두 책은 모두 그녀가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일하면서 남편의 빚을 어떻게 청산하고 자신의 자산을 명백히 갖춘 지도자로서 어떻게 성장해 갔는지를 안팎에서 보여준다.

‘힘든 선택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힐러리가 한때의 적이었던 오바마와 협력하면서 미국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으로 옮겼는가를 안쪽에서 회고한다. 미국이라는 현실 권력이 보여 주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무력 개입도 불사하는 차가운 작동 원리와 여성이나 성 소수자 등 약자의 권리 옹호를 비롯해서 보편 가치를 확산하려는 개인의 뜨거운 결의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때때로 안쓰러운 느낌이 들 정도다. 그것은 대개 ‘선택’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그 선택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곧 우리의 모습이 된다”는 첫 줄의 문장이 말하듯, 이 책은 거대한 선택들을 통해 힐러리가 어떻게 미국과 세계를 떠맡을 만한 지도자로 성장했는지를 고백의 형태로 드러낸다.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그 선택이, 주로 미국 국내에서 어떤 정치적 결과를 빚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힐러리 캠프의 시각을 주로 드러내고 있기에 결코 객관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런 점 덕분에 권력의 향방을 둘러싸고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미국 정치의 실상을 거름망도 없이 노골적으로 서술한다. 정치적 동반자에 대한 보은과 배신자에 대한 징벌에서 시작해서 아프가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리비아 등 전 세계에서 미국이 펼친 외교라는 이름의 작전(?)이 역동적으로 묘사된다. 정감 넘치면서도 극도로 잔혹한, 이익을 좇는 듯하면서도 어느새 의리로 움직이는 정치의 모습이 진실로 생생하다. 정치 관련 스릴러 소설이라도 읽는 것 같다.

두 책에 따르면, 미국의 외교적 관심사는 ‘미국의 귀환’, 즉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미국의 입지를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면서도 다른 국가들의 관심사와 관점도 배려할 줄 아는 미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전달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조지프 나이가 제안한 ‘스마트파워’다. 한 국가를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움직이기 위해 군사력, 경제 제재 등과 같은 하드파워와 정치·경제적 원조 등과 같은 소프트파워를 하나로 결합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가령,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배치와 북·미회담을 동시에 제안하는 이중 책략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힐러리는 이 정책의 입안자이자 적극적 실행자였다는 점이다.

두 책은 힐러리의 대선 전략을 분명히 드러낸다. 바로 ‘유리천장 깨기’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역사의 진보를 분명하게 표시한 것만큼, 최초의 여성 대통령 역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오바마에게 패배했을 때, 힐러리는 자신이 얻은 표를 “유리천장에 난 1800만 개의 균열”로 비유했다. 유리천장을 마저 깨뜨림으로써 “여성의 권리가 곧 인권이고, 인권이 곧 여성의 권리”라는 자신의 말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세상의 진보에 대한 그녀의 끈질긴 믿음이다. “성취에 절대 안주하지 마라. 절대 그만두지 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절대 멈추지 마라.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완성 과업이다.” 만약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고, 이 과업을 현실화하려고 할 때, 또 거기에 답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과연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한 칼럼에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미국이라는 한계’를 언급하면서 “한국 정치를 생각할 때, 미국의 역할(개입)을 빼버린다면 그것은 공허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냉정하면서도 정확한 인식이다. 미국과의 전략적인 관계 설정을 논하지 않고, 한국의 미래를 말하는 것은 낭만적으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 두 책을 읽다 보면, 세계를 바라보는 미국의 프레임 위에서 중국도, 일본도, 한국도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이는 것이 뚜렷이 드러난다. 물론 틀 자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요청하는, 자유의 확산이라는 미국의 명분을 이용해서 판 자체를 바꾸는 창조적인 움직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이라는 현실’을 읽을 줄 아는 실력이 뒷받침될 때에야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한국의 리더들, 특히 정치 외교의 리더들은 누구나 이 두 책을 읽고 마음의 입장을 정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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