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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4월 24일(金)
“‘통일 대박’은 경제적 발상… 通一길 다져야 統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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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간 수형생활을 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감옥은 대학(大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변방의 창조공간에서 길어올린 혜안과 동양고전을 통해 얻은 세계에 대한 통찰을 담아 ‘대담’을 펴냈다. 사진은 신 교수가 성공회대에서 강의하는 모습. 돌베개 제공
담론 / 신영복 지음 / 돌베개

대학 시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우연한 기회에 접했다.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아껴 읽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20년간 수형생활을 한 무기징역수가 가족에게 보낸 옥중서신의 묶음. 편지 한 통을 읽는 데는 5분이면 충분했지만, 대학 수업 1시간 이상의 무게가 있었다. 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끄집어낸 문장들은 삶의 지혜와 혜안, 시대를 읽는 깊고 넓은 인식 그 자체였다. ‘신영복’이란 이름 석 자가 주는 아우라는 참 강렬했다.

편집국으로 한 권의 신간이 배달됐다. 신영복(74)의 ‘담론’. 단지 책 제목과 이름일진대 시선을 한참 뺏겼다. 그는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이듬해부터 25년간 성공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년 퇴임 후에도 인문학 특강 형식의 강좌를 맡아 진행했다. 하지만 2014년을 끝으로 더 이상 대학 강의를 하지 않기로 했다. 책은 그가 강의를 대신해 내놓은 것이다. 학생들이 기존에 만든 녹취록 3개와 2014년도 2학기 강의노트가 바탕이 됐다. 부제대로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다.

25개 장으로 이뤄진 책은 인간과 세계에 관한 인문학적 담론을 담고 있다. ‘시경’, ‘주역’, ‘논어’, ‘맹자’, ‘노자’, ‘한비자’ 등 동양고전과 그의 옥중 체험이 재료로 쓰였다. 동양고전 강의록인 ‘강의’ 이후 10년 만에 내놓는 저작을 통해 ‘이 시대의 지성’은 비정하고 척박한 인간과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또 한번 일러준다.

신영복은 우선 협소한 인식틀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詩書畵)라는 두 개의 오래된 세계 인식틀 중 우리가 문사철에만 과도하게 갇혀 있다는 진단이다. 문사철은 세계의 본질과 운동을 추상화한다. 논리적이지만 그것을 담은 언어를 넘어서진 못한다. 반면, 시서화는 세계를 더 풍부하고 자유롭게 담아내 더 높은 인식틀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영상서사의 양식이 새로운 인식틀로 뜨고 있다. 공부는 이런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의 상상력, 영상서사의 압도적 전달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조화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균형 잡힌 인식틀은 세계의 변화를 읽어내는 눈을 만든다. 패권 논리가 여전히 세계 질서를 장악하고 있지만, 역사상 패도는 항시 실패로 귀결됐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담론은 공자의 화동론(和同論)이다. ‘동’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요, ‘화’는 존중과 공존의 논리다. 세계질서는 ‘동’이 아닌 ‘화’를 지향할 때 평화에 다가선다.

신영복은 이를 통일 담론으로까지 끌고 간다. 그에게 통일(統一)보다 중요한 것은 ‘통일(通一)’이다. 평화 정착, 교류협력,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통일(通一)이고, 이것만 확실히 다져간다면 통일(統一) 과업의 90%는 달성된다는 것. 억지로 하나가 되기보다 통일(通一)에서 통일(統一)로 가는 과정을 지혜롭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을 납득가지 않는 정서라고 말한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열린 사고가 아닌 경제주의적 발상으로 근본은 동의 논리라는 이유다. 눈물겨운 화해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가슴 벅찬 출발(통일)이 대박처럼 갑자기 다가올 때는 오히려 파탄이고 충격이라고 지적한다.

더불어 신영복이 보는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는 톨레랑스(관용)를 넘어선 노마디즘(유목주의)이다. 차이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차이가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출발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톨레랑스가 타자가 언젠가 동화돼 오기를 기다리는, 은폐된 패권 논리라고 지적한다. 상대의 장점을 배우고 변화하는 유목주의야말로 진정한 공존이다. 책에는 이 때문에 ‘관계’에 대한 담론이 빈번하게 나온다. 인간은 관계 맺음으로 존재한다. 그의 개인사가 녹아있는 옥중 일화들도 ‘문도득’ ‘나팔수’ 등 함께 지낸 수감자 한 명, 한 명으로부터 얻는 깨달음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인간이 함께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아우르는 큰 주제다. 마지막 장에는 ‘주역’의 ‘석과불식(碩果不食·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이 쓰였다. 신영복은 이를 “내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라고 했다. 가지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감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존재기 때문에 그 씨를 먹어선 안 된다는 지혜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경제·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담론’은 또 다시 아껴 읽어야 할 책이다. 더 많은 이해를 원한다면 돌베개 출판사 홈페이지(www.dolbegae.co.kr)와 더불어숲 홈페이지(www.shinyoungbok.pe.kr)에서 강의에 썼던 교재를 내려받을 수 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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