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때 과거사 문제 교묘히 회피할 듯

한국과 일본의 역사 갈등 속에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어느 수준의 언급을 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村山) 담화와 고노(河野) 담화의 계승 의사를 피력하면서도 수식어로 ‘전체로서’ 또는 ‘기본적으로’라는 단어를 사용해 과거사 문제를 회피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미국 의회 일부 의원들과 재미교포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아베 총리를 향해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분명한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뉴욕의 시민참여센터와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등은 아베 총리의 미·일 정상회담과 상·하원 합동연설이 예정된 28∼29일 의회 앞에서 7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의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등 25명도 지난 23일 일본의 과거사 사죄를 촉구하는 연명 서한을 주미 일본대사관에 발송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 배경을 분석한 26일자 기사에서 “이번 방미에서는 아베 총리가 일본의 전시 역사(Wartime history)에 대해서 어떤 연설을 할지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로써는 아베 총리는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행위를 사과한 고노 담화를 일단 계승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일본대사는 21일 “아베 총리는 이미 무라야마·고노 담화 등 역대 정권의 역사인식을 ‘전체로서’ 계승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식어가 담긴 문장은 ‘맥락과 흐름을 유지하지만 의견은 다르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아베 총리 역시 겉으로는 역대 담화의 계승 의지를 보이면서, 속으로는 전쟁범죄는 지나간 과거의 문제라는 식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의회의 일부 친일파 의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워싱턴=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