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의 ‘반란’ 그때 그시절의 ‘향수’… 새로운 ‘감성’으로 부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룹 빅스는 원조 아이돌 그룹 알이에프(R.ef)의 히트곡 ‘이별공식’을 리메이크해 음원차트 정상을 밟았다.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트로트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한 가수 한영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선배인 영턱스클럽의 ‘정’을 다시 부른 걸그룹 트랜디.

요즘 가요계 키워드는 ‘다시 부르기’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명곡들이 리메이크되며 아이돌 일변도로 흘러가던 가요계에 새 흐름을 만들고 있다. 거미, 린 등 실력파 보컬리스트부터 장윤정, 한영 등 트로트 가수와 아이돌 그룹 빅스와 트랜디도 가세했다.

리메이크는 MBC ‘나는 가수다’와 KBS 2TV ‘불후의 명곡’ 등 흘러간 히트곡을 재편곡해 부르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며 대중에게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전제 조건은 있다. 원곡이 갖는 매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만의 색을 낼 수 있는 실력파 보컬에게만 허락된다. 능히 이런 자격을 갖춘 여성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인 거미는 박효신의 ‘해줄 수 없는 일’, 신승훈의 ‘로미오&줄리엣’ 등이 실린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했고, 린은 걸그룹 소녀시대의 ‘베이비 베이비’를 새롭게 매만졌다.

올해 초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이후 1990년대 음악들이 재조명받으며 당시 사랑받았던 노래도 다시 불리고 있다. 빅스(VIXX)는 당시를 풍미한 알이에프(R.ef)의 히트곡 ‘이별공식’을 리메이크해 각종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과 음원 차트 정상을 밟았고, 신인 걸그룹 트랜디는 영턱스클럽의 ‘정’을 다시 불렀다. 신세대 아이돌이 구세대 아이돌을 되살린 셈이다. 알이에프의 멤버였던 성대현은 빅스의 녹음실을 방문해 “요즘 감성에 잘 맞게 신나게 리메이크했다”며 “이 노래가 널리 알려져 ‘이별공식’을 기억하는 팬들이 향수에 젖길 바란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또한 신인 보컬 그룹인 서린동아이들은 발라드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를 리메이크해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등 실력파 아이돌 그룹들이 리메이크 붐을 선도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들도 리메이크 행렬에 동참했다. 그동안 출산과 육아로 2년여 공백기를 가졌던 장윤정이 선봉에 섰다. 그는 22일 정규 7집 ‘여왕’을 발표하며 신곡 외에 자신의 히트곡 ‘초혼’과 ‘사랑가’를 리메이크해 앨범에 실었다. 장윤정의 소속사 측은 “복고풍의 네오 트로트, 어쿠스틱 트로트 등 새로운 장르의 조화를 꾀했다”며 “또한 리메이크를 통해 장윤정 특유의 맛깔스럽고 풍부한 감성 또한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트로트 걸그룹 LPG 출신인 한영 역시 트로트를 비롯해 32곡의 리메이크 곡을 담은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남진의 ‘둥지’와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 한 시대를 풍미한 트로트부터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와 같은 발라드곡까지 다채로운 리메이크 곡이 수록됐다. 리메이크된 노래는 원곡을 즐기던 세대와 이를 편곡해 접하는 세대가 공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노래의 완성도를 높이기보다는 화제성이나 상업성을 앞세운 리메이크는 단기적으로는 가요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볼 때 가요계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우려의 시선도 많다.

강태규 대중음악평론가는 “새 음원이 발표돼도 활동 기간이 3주가 넘기 힘들기 때문에 그 기간에 신곡을 홍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다양한 연령층이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리메이크 곡을 통해 세대 간 간극을 줄이고 노출도를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보편화되면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 줄어들고 장르 다양성이 부족해진다”며 “쉽게 가려다 멀리 갈 수 없게 돼 가요계가 정체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