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1촌이 행복시대 이끈다>“12년째 교류… 직원들 올 땐 마을 잔칫날이죠”

대한항공 - 강원 홍천 명동리마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항공 직원과 자녀들이 지난 24일 1사1촌 결연마을인 강원 홍천군 남면 명동리 한 비닐하우스에서 고추 버팀대를 설치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오늘은 마을 잔칫날이야. 내 자식 올 때도 이렇게 들뜨지 않았던 것 같아….”

지난 24일 오전 9시 강원 홍천군 남면 명동리 해밀학교 운동장에 대한항공 로고가 새겨진 대형버스가 도착하자 마을 주민 용구영(80) 씨는 “명절도 아닌데 서울 간 자녀를 기다리는 기분”이라며 45명의 직원을 반갑게 맞았다.

버스에서 내린 직원들이 마중 나온 10여 명의 주민과 안부를 나누기 위해 모이자 누가 직원이고 주민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친숙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마을을 배회하던 강아지가 연신 꼬리를 흔들며 무리 틈으로 들어올 때쯤 한 직원은 지난해 봤던 다른 강아지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마을 반려견의 안부까지 챙길 만큼 한데 모인 이들은 가족 같았다. 지난 2004년 1사1촌이라는 협약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 어느덧 12년째다. 그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대한항공은 1년에 봄과 가을 두 차례 명동리를 찾았다.

특히 이날 마을을 찾은 봉사단 일행 45명 중 어린 자녀와 짝을 이룬 가족단위 참가자가 12명에 달해 분위기는 더욱 활기찼다.

아들 승기(7) 군과 함께 온 김학신 대한항공 기내식생산팀 과장은 “교실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을 아이에게 심어주고 있다”며 “마을 어르신들이 친손주처럼 아들을 대해줘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종행(59) 명동리 이장은 “90가구에 160여 명이 모여 사는 이곳에는 50대가 제일 젊은 일손”이라며 “에너지가 넘치는 대한항공 직원들을 만나는 날이 1년 중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라고 말했다.

주민들과 인사를 마친 대한항공 봉사단은 6개 작업조로 나뉘어 본격적인 작업에 투입됐다. 따뜻해진 날씨에 걸맞게 이날 작업은 못자리를 준비하거나 모종을 심는 등 봄맞이 준비가 주를 이뤘다.

못자리에 상토 담는 임무를 부여받은 김희정 대한항공 정비훈련원 과장은 “이건 봉사가 아니라 그저 각자가 삶을 나누는 것”이라며 “농촌의 일상이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상 나누기’를 실천하듯 주민들은 단순한 작업에도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재배 상황을 공유했다. 봉사단에 작업 지시 사항을 전하던 한 마을 주민은 “농작물이 커가는 과정을 보면 지금 하는 반복 작업에 더 큰 애정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못자리 작업 장소에서 200m 떨어진 옥수수밭에서는 모종 심기가 한창이었다. 이번이 두 번째 명동리 방문이라는 박태식 대한항공 원동기정비공장 차장은 “지난번 해봤던 작업이라 일이 손에 익었다”면서 “농번기 하루짜리 일이지만 내 목표는 무조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자’는 것”이라고 쉴 새 없이 흙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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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고추 재배 비닐하우스에는 버팀대 박기 작업 중 새참 자리가 펼쳐졌다. 대한항공의 젊은 직원들에게 막걸리와 음료수 잔을 권하던 농장 주인 최원국(62) 씨는 벌써부터 이들을 떠나보내는 게 아쉽다는 듯 “마음 있으면 한 번 내려와서 농사짓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젊은 사람들이 이런 시골에 있으면 내가 업고 다니겠다”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8세 딸과 함께한 이승영 대한항공 부기장은 “여기 사는 건 힘들어도 매년 가족과 함께 찾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대한항공 일행을 향한 마을 주민들의 각별함은 의료봉사단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더욱 잘 드러났다. 대한항공 항공의료센터 소속 의사와 간호사 등 5명의 의료봉사단이 마을 체육관에 자리 잡자 오전에만 100여 명의 마을 노인들이 몰렸다.

허리가 아프다며 파스를 한 움큼 얻은 황영자(여·75) 씨는 “대한항공 사람들 오는 날짜를 한 달 전부터 달력에 적어놓고 하루하루 날짜를 세면서 기다렸다”며 “이 고마운 물건은 아껴 써야겠다”고 아이처럼 웃었다.

권영환 대한항공 항공의료센터 전문의는 “명동리는 물론 요즘 대한민국에 의료 사각지대는 없다”며 “다만 의료진과 친근한 교류 자체가 주민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의료봉사단의 진료는 전문적인 진단보다 일상적인 소통을 중시하고 있었다. 어깨나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마을 노인들에게 최근 무슨 일을 했는지 묻고 마음껏 털어놓게 해 심리적인 위안을 주는 식이다.

낮 12시쯤 해밀학교 식당에는 잡채, 묵, 두부, 전 등 11첩 반찬이 포함된 푸짐한 시골 밥상이 차려졌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봉사단이 빈 그릇을 내놓기 무섭게 끊임없이 반찬을 채웠다.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지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치는 직원들에게 마을 주민들은 “이게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음의 표시”라며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후 일정 후에는 지난 11년간 그랬듯 삼겹살 파티로 다시 만날 가을을 기약했다.

주민 최훈(68) 씨는 “헤어질 때가 되면 서로 ‘이것밖에 못해 줘서 미안하다’고 하며 아쉬움 때문에 쉽게 등을 돌리지 못한다”며 “꼭 부모·자식 관계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