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법은 ‘집권야당’ 만드는 법

靑·여당서 강조한 법안
野, 일단 막고 ‘흥정’나서
김무성 “아무것도 못한다”

지난 4월 19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에서 새누리당이 청와대에 ‘박근혜 대통령의 입단속’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까지 국무회의나 청와대의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특정 법안들을 직접 거론하며 국회의 조속한 법안처리를 당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법안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새누리당으로선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주문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만든다는 생각이 강하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6일 “야당은 박 대통령이 강조한 법안은 일단 막아 세우고 본다”며 “아무 쟁점 없이 협의가 잘 되던 법안들에 대해서도 야당은 박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그렇게 중요한 법안인 줄 몰랐다’면서 장기간 쥐고 흥정에 나서려고 한다”고 전했다.

사실상 국회의원의 60% 이상이 동의한 법안에 대해서 본회의 통과가 가능토록 한 국회선진화법(2012년 5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최근엔 야당의 선진화법 활용 노하우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여권 내부에선 “선진화법은 망국법”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도 “국회선진화법이 야당이 쥔 ‘전가의 보도’라는 사실을 최근 더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며 “선진화법은 소수의 야당을 제왕적 ‘갑’의 위치에 올려놓은 법”이라고 탄식했다.

국회선진화법은 폭력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을 등에 업고 지난 2012년 5월 전격 처리됐다. 하지만 선진화법 통과로 무력충돌을 일삼던 ‘동물 국회’는 막았지만 야당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 법안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식물 국회’라는 새로운 병폐를 만들었다는 비판 속에 새누리당 내부에선 법 개정 1년도 되지 않아 재개정의 목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법안이 원칙과 이성적 판단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야의 노골적인 흥정 대상이 됐다는 우려가 멈추지 않고 있다.

실제 김무성 대표도 최근 공무원연금개혁 협상 과정에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문제는 선진화법 개정을 위해선 선진화법 규정을 적용받아 60% 이상의 의원이 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선진화법의 직권상정 금지조항 등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의결권을 침해해 위헌에 해당한다며 국회의장 등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지만 실제 위헌 판결을 받을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