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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5월 08일(金)
‘스마트 세상’…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다
신발끈은 못묶어도 앱은 자유자재 … 부모도 ‘디지털 삼매경’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밴드
디지털 시대, 위기의 아이들 / 캐서린 스타이너 어데어·테레사 바커 지음, 이한이 옮김 / 오늘의 책

가족 해체, 가족 붕괴, 가족 위기 같은 말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한때 모두에게 충격이었던 가족 해체는 이제 자연스러운 변화로 여겨지며 익숙한 현실 조건이 됐다.

한국사회에서 가족 해체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하 대량 해고와 함께 부권이 무너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탈권위, 집단보다 개인이 우선이라는 사고, 혈연주의에 대한 비판, 남녀평등, 문화적 다원주의의 급물살 속에 속도를 높여갔다. 남편은 어린 애인과, 부인은 옆집 고등학생과, 시어머니는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피우는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2)은 껍데기만 남고 속은 문드러진 가족의 실상을 드러냈고, 비혈연 공동체 운동도 벌어졌다. 이렇게 가족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너덜너덜해졌지만 사회적 변화와 논의 속에 나름의 답에 이르렀다. 아버지-어머니-자녀의 화목한 가족이라는 근대적 가족 이미지에서 벗어나 동거, 미혼모, 편모 가정, 비혈연 가족까지 그 폭이 넓어졌다. 가족을 이루는 핵심은 형식이 아니라 사랑, 정서적 결속감, 진정한 소통, 안정감 같은 내용이라는 유연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 가족의 핵심 요체인 정서적 결속감과 안정감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대상이 나타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게임, 바로 디지털이다. 디지털이 삶과 일상, 관계에 미치는 전방위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히 가족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미국에서 2013년에 출간된 책은 디지털 시대, 가족이 어떻게 위기에 처했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원제는 큰 단절(Big Disconnect). 디지털이 어떻게 가족 관계를 단절시키는가에 대한 긴 이야기다. 저자들은 디지털 시대 가족은 부모-자녀-네트워크의 위태로운 삼각관계라고 봤다.

삼각관계의 한 축인 아이들을 먼저 보자. 하버드대 의학대학원 임상심리학자(어데어)와 심리전문 저널리스트(바커)로 특히 아동 청소년 전문가답게 테크놀로지가 아이들의 성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견해를 요약하며 이렇다.

디지털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방해하고, 물리적 세상에 대한 감각·세상을 상대로 한 창의적인 실험을 차단한다. 2∼5세 미국 아이들이 신발 끈을 묶는 것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갖고 노는 것을 더 잘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아이들은 성인문화에 빨리 노출돼 정신적 외상을 입고, 거짓말·속임수·성과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인터넷 문화를 수용한다. 디지털 기기가 자유로운 놀이를 대체해 문제 해결 능력, 추론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떨어뜨리니, 한마디로 아이들 뇌를 망쳐놓는다는 것이다. 즉답을 주는 디지털 문화의 속도에 젖다 보면 보통의 자연스러운 삶의 속도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고도 했다.

삼각관계의 또 다른 축인 부모들은 어떤가. 어른 역시 디지털 중독이다. 저자들이 미국 초등학생 1000여 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아빠·엄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전화를 거는 아빠, 스마트폰에 바쁜 엄마인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이들은 부모와의 안정된 교류를 원하지만 정작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하는 애정 어린 순간에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SNS에 마음을 뺏기고 있다. 흔히 10대 청소년들이 부모와 대화를 거부한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부모들이야말로 자녀와의 대화를 거부한다는 지적이다. 아이들과 친한 친구처럼 지내겠다며 자녀에게 무제한적 자유를 주고 규칙을 만들어주지 않는 부모 역시 무책임한 어른이라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일으키는 각종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아이들은 당연히 사이버 불링, 포르노그래피, 사생활 유출, 디지털 사기 등에 휘말릴 수 있다. 이때 자녀들이 부모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도 부모들은 대부분 겁을 내거나, 흥분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몰라 우왕좌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스마트폰을 끄고 컴퓨터의 플러그를 빼버리라는 반 디지털주의자는 아니다. 테크놀로지는 중립적이라는 것,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디지털을 관리하라는 것이다. 집에선 컴퓨터를 끄든, 게임 시간을 정해놓든, 새 프로그램을 할 때 부모에게 의논하든 방법은 가족마다 제각각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지속가능성, 가족이라는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이다.

“가족도 하나의 생태계다. 강건하고 다양하며 탄력적으로 유지해 가족들이 소통하고, 사랑하고, 아이는 부모에게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테크놀로지와 디지털을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적극적으로 관리해야지, 통제권을 놓쳐 가족이라는 생태계 전체를 좌우하게 두지 말라는 조언이다.

디지털에 대한 이들의 비판 자체는 그리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구체적 상담사례에서 드러난 생생한 현실, 어른들이 의외로 자신의 디지털 중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거나, 자기 편하자고 아이들을 디지털 세계로 밀어 넣는다는 지적 등에선 꽤 불편해진다. 우리들 모습이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결코 제대로 알지 못한 디지털시대 가족 관계를 정확하게 보기 위해 필요한 책이다. 게다가 5월, 가정의 달이지 않은가. 책은 미국에서도 이 분야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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