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인문학이다 -上>“인문학 발전 없인 국가 발전도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강영안 서강대 명예교수,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김흥규 연세대 석좌교수(왼쪽부터) 등 원로 인문학자들이 7일 서울 중구 태평로 더 플라자 호텔에서 인문학 진흥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창의력과 상상력이 강조되는 지식기반사회에서 인문학의 발전 없이는 국가 발전도 없다고 인문학계 원로들이 주장했다. 교육부가 오는 6월 인문학 진흥 종합방안 발표를 앞두고 마련한 ‘인문학계 원로와의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이같이 밝혔다.

“산업화 → 지식기반 시대로 인문학소양 갖춘 인재 필요
‘삶의 지혜 터득’ 관점에서 인문학, 실용성 강한 학문”

좌담회는 7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렸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김우창(영문학) 고려대 명예교수, 한영우(한국사) 서울대 명예교수, 김흥규(국문학) 연세대 석좌교수, 김영한(서양사) 서강대 명예교수, 이한구(철학) 경희대 석좌교수 등이 대화를 나눴다. 진행은 강영안(철학) 서강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좌담회에서 인문학계 원로들은 창의력과 상상력이 강조되는 지식 기반사회에서 인문학의 발전 없이는 국가 발전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인문학이 국가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원로들은 주장했다. 한영우 교수는 “값싼 노동력과 시장만 있으면 국가가 발전하던 산업화 시대를 벗어나 지식기반시대가 도래했다”며 “지식기반시대에는 인문학적 마인드 없이는 기술 발전, 나아가서는 국가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한구 교수는 “기업에서도 인문학적 마인드를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며 “인문학 발전은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의 자연스러운 요구”라고 강조했다.

또 원로들은 성과 위주의 대학과 교수 평가가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한구 교수는 “졸업생의 취업률이 교육부의 대학 평가에 반영되다 보니 취업률이 낮은 인문학은 대학에서 소홀하게 취급한다”며 “이공계, 사회과학계열은 정년퇴직 등으로 교수 수가 줄어들면 빨리 충원이 되는데 인문 계열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김흥규 교수는 “인문학이 돈이 되지 않는 비실용학문이라 홀대하는 것이 문제”라며 “인문학도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실용성이 강한 학문”이라고 주장했다. 인문대학 교수들의 연구 시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제기됐다. 한영우 교수는 “인문학은 사색하고 책을 많이 읽는 학문”이라며 “교수 수는 적고 학생 수는 많아 강의 부담이 많은 데다 과도한 행정업무까지 처리해야 해서 교수들이 공부할 시간이 적다”고 지적했다.

원로들은 성과 위주의 대학 평가를 개선해 학생들이 학부 과정에서라도 인문학을 마음 놓고 접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우창 교수는 “학부 과정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등 교양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며 “영국의 옥스퍼드대나 케임브리지대처럼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합전공을 늘려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인문학 교수들이 강의안 작성 단계부터 공을 들이는 식으로 인문학 강의에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로들은 인문학 발전을 위한 재원 투입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한 교수는 “정부가 인문학 발전을 위해 2000억 원을 투자하는 데 있어서도 마구잡이식, 나눠주기식 지원보다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개혁은 불가피하나 각 대학의 특성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로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성인들에서도 인문학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측했다. 대학의 문턱을 낮춰 이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원로들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에 대해 황 부총리는 “인문학적 혜안 없이는 국가가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간다는 원로들의 말에 공감한다”며 “인문학 부흥을 위해 충분한 재원을 과감히 투자해 인문학 연구 증진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취업률 상승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황 부총리는 지난 4월 1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인문학 발전을 위해 20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하겠다”며 “지역거점 국·공립대를 중심으로 인문학과 기초학문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