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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5월 15일(金)
음식, 접시에 쓴 ‘회고록’
도시남녀의 로컬푸드 1년 도전기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농장에서 식탁까지 100마일 다이어트 / 앨리사 스미스·제임스 매키넌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 마음

TV를 켜면 거의 쓰나미(지진해일) 수준의 음식, 음식, 또 음식이다. 스타 셰프부터 배우 차승원까지 유명인들이 나와 음식을 만들고 먹고, 맛집을 찾아 헤매다 먹고, 시골 밥상에 감동해 먹고, 게임에 이겨서 먹고 져서 먹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지금 먹고 있는 요리와 오늘 만든 요리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같은 국민적 음식 요리 열풍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음식 열풍이 한두 이유로 설명될 수 없듯 불편함도 한두 가지로 잘라 말할 수 없는데, 캐나다 프리랜서 기자 커플의 ‘100마일 다이어트’를 읽다 보면 이 불편함의 정체가 점점 분명해진다. 이들이 ‘최고의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부분에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맞아 음식은 이런 거야.”

2007년 출간 후 세계 곳곳에서 로컬푸드 신드롬을 일으킨 화제의 책 ‘100마일 다이어트’는 우리가 매일 매일 삼시세끼를 먹으면서도 완전히 잊어버린 음식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숟가락의 밥에 대자연과 역사, 세상과의 관계, 개인의 추억 등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고 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음식을 만들고, 먹는다는 것은 특별히 되새기지 않아도 이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1년 동안 로컬푸드를 먹어 보는 건 어때?”

2005년 3월. 캐나다 밴쿠버, 좁은 아파트에서 제임스가 제안하고, 앨리사가 이에 말려들면서 모든 것은 시작됐다. 제안과 말려듦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며칠 전 친지들과 머문 시골 농가에서의 한 끼 식사였다. 주변에 작은 가게도 없는 곳에서 냉장고엔 썩은 양배추 한 통밖에 없던 이들은 각자 재료를 구해오기로 했다. 거대한 산천어를 낚아왔고, 숲에서 살구버섯을 안고 왔고, 방치된 텃밭에서 감자를, 버려진 과수원에서 사과와 체리를 구해왔다. 어둑해진 저녁, 접시를 깨끗이 비우면서 이들은 ‘평생 이렇게 먹을 수 없을까’ 생각했다. 또 다른 이유는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먹는 음식 재료들의 평균 이동거리가 1500마일이라는 신문 기사였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캐나다의 춘분인 3월 21일. 1년간 거주지 반경 100마일 이내에서 자라고 생산된 음식만 먹는 실험에 들어간다. 연어 산란장인 프레이저강, 농장과 과수원들로 가득한 세일리시해,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빅토리아 지역 등을 연결해보니 대략 100마일 안이었다. 이들은 자신만만했다. “100마일 다이어트, 이거 너무 쉽겠는걸.”

하지만 바나나, 망고처럼 이국적인 음식만 포기하면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매일 같이 식탁에 오르는 밀가루도 원산지를 100마일 반경으로 좁히니 구할 수 없어 7개월을 감자로 버텨야 했다. 설탕은 물론 시리얼, 올리브 오일, 쌀과 맥주도 먹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의지엔 금이 갔다. 옥수수를 구하기 위해 반나절을 헤매고, 콩을 구하려 국경을 넘고, 과일 조림을 만드느라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들은 6월 어느 날, 재료를 구하기 위해 떠난 길에서 자신들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이 월별로 번갈아 쓴 책은 식재료를 찾아 헤맨 로드 무비이다. 농부·어부·농장 한 사람 한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이야기이며, 채소를 직접 키운 텃밭 기록이며, 제한된 재료로 만드는 소박한 요리책이다. 캐나다의 대자연, 재료와 요리에 대한 역사, 잊힌 전통 요리법의 복원,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 대한 성찰도 자연스럽게 풀려 나온다. 당연히 로컬 푸드가 지역 경제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해를 넘긴 1월, 이들은 초대를 받는다. ‘100마일 다이어트’가 알려지면서 200마일 다이어트, 50마일 다이어트 등이 잇따르자, 한 레스토랑에서 ‘100마일 메뉴’를 개발해 평가를 요청했다. 기대 속에 음식평론가와 함께 식탁에 앉은 두사람, 하지만 이들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음식이 있어도 누구 하나 즐기지 않았다. 모두 평가만 하려 했다. 이것이 음식을 대하는 현대의 방식이다. 음식을 완벽한 계획을 거쳐 접시에 올라온 하나의 기적으로 여기는.” 이들은 서먹한 그 자리에서 2005년, 마지막 날 자신의 집에서 친구들과 보낸 유쾌한 저녁 식사가 떠올렸다.

“크래커를 먹을 때는 해미시 크로퍼드와 그의 밀밭, 눈보라를 헤치고 밀가루 세 통을 배달해준 에이드리엔이 절로 생각났다. 파스타는 북태평양 연안 밀농사의 흐름을 더듬어 보게 해줬다. 토마토소스는 가을날 오후 앨리사와 함께 거의 줍다시피 한 토마토로 만든 것이었다. 그 토마토를 유리병에 저장하면서 앨리사와 내가 어떤 식으로 다퉜는지 이제는 웃으며 회상할 수 있다. 소스에 뿌린 고수는 밴쿠버섬에서 난 것이며, 월계수 잎은 우리가 공동체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었다. 오레가노는 발코니에 있는 화분에서 땄고, 양파는 농민장터에서 구입했으며 마늘은 오랜 친구에게서 얻었다. 빻은 호두는 큰 형과 함께 안개 속에서 샀다. 오븐에서 번지는 블루베리 향은 모든 것이 새로웠던 봄날을 연상케 했다. 그날의 식사는 그냥 음식이 아니라, 한편의 회고록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다.”

가볍게 시작한 로컬 푸드 실험이 바꾼 것은 식단뿐 아니라 삶이었고, 실험이 안겨준 것은 소박한 식탁의 기쁨뿐 아니라, 삶에 대한 경이로운 감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떠들썩한 요즘 우리의 요리·음식 열풍엔 이런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요리와 음식마저 경쟁이 된 듯한 일면. 그래서 요즘 음식 열풍은 겉으로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지만 그 속을 보면, 전혀 새롭지 않은 또 하나의 액세서리일 뿐이다. 그래서 음식열풍이 불편하다. 음식이 삶을 더 깊게 만들고 삶은 어떻게 음식의 일부가 되는지를 이야기하는 이 책. 10년 전에 나왔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유의미하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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