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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5년 05월 20일(水)
‘잡을까, 업을까’ 윷놀이 수싸움 … 물리학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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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1) - 생활과 물리학

▲  일러스트 = 안은진 기자 eun0322@munhwa.com

“그런 것도 물리학인가요?” 자주 듣는 말이다. 하긴, 족보에 있는 자료를 가지고 과거 우리나라 성씨에 대한 연구를 한 적도, 혈액형이 성격과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본 적도 있으니 그런 질문을 받을 만도 하다. 주식시장에서 주가의 변동에 대해 연구한 적도 있고, 그러다가 또 뇌 안의 신경세포가 서로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연구한 적도 있다. 고속도로 정체에 대한 연구를 해서 갑자기 텔레비전 뉴스에 교통문제 전문가로 소개된 적도 있고, 프로야구 경기일정표를 어떻게 짤지를 살펴봐서 신문 스포츠면에 등장한 적도 있다. 작년엔가는 또 윷놀이에서 이기려면 상대편 말을 잡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자기편 말에 업히는 것이 더 좋을지를 연구한 적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필자가 했던 연구들이 정말 물리학이 맞는지, 도대체 물리학과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며 밥 먹고 사는 물리학과 교수가 그런 연구를 해도 잘리지 않는지가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참 궁금한 모양이다.

우리 모두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매일매일 누구나 겪는 일을 물리학자의 눈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다. 필자가 처음 우리나라의 성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즈음의 일이다. 우리나라 통계청 홈페이지에는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많다(이 자리를 빌려 감사). 그곳에서 사람들 성씨에 대한 자료를 내려받아, 마치 물리학의 실험 결과를 분석하듯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살펴보다 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됐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학자는 이전에 어떤 비슷한 연구들이 있었는지를 먼저 검색해 보게 된다.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정량적인 방법으로 성씨 분포에 대해 연구한 논문을 몇 편 찾을 수 있었다. 그 논문들이 도대체 어떤 학술지에 출판됐는지를 봤다. 모두 다 하나같이 물리학 분야의 학술지였다. 물론 성씨 분포에 대한 연구를 물리학자들만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예를 들어 ‘17세기 청주 지방 한 고을의 성씨에 대한 연구’는 물리학자들은 하지 못한다. 물리학자들은 성씨 연구도 물리학자처럼 한다. 물리학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예를 들어, 일본 성씨의 확률분포 함수는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지와 같은 거시적인 패턴, 그리고 그런 차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거다. 위에서 언급한 필자의 괴짜 같은 연구들은 모두 다 연구가 완성돼 물리학 분야의 학술지에 출판됐다. 물리학자도 세상을 본다.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말이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철학은 명료하게 사유하려는 특별히 완고한 노력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철학은 사유의 극한, 혹은 경계 (limit of thought)에서 형성되는 행위”라고도 말했다. 현재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을 모조리 모은 커다란 덩어리에서, 철학은 가장 바깥의 얇디얇은 경계선에서 시작된다는 뜻일 거다. 인간 사유 범위의 확장에 따라 철학의 경계는 밖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으니, 철학은 영원히 인간 지성의 최전선일 수밖에 없다는 말도 되리라. 그것도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하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철학’을 통해 우리가 성찰하는 사유가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용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용’하게 된 부분은 경계 밖에서 안으로 넘어와 내부에 포섭되고 따라서 더 이상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은 또 사유의 외부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 세상 밖을 겨눈다.

필자는 물리학자다. 필자는 물리학도 철학 못지않아서 “물리학도 명료하게 사유하려는 특별히 완고한 노력이다”라고 생각하는 물리학자다. 필자는 또 “물리학도 사유의 극한, 혹은 경계에서 형성되는 행위”라고 믿는다. 더 이상 철학이기를 멈춘 인간 사유의 대상은 우리가 보고, 재고,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현실성’의 옷을 입는 순간, 물리학의 대상이 된다. 인간 사유의 최전선에서 물리학은 철학과 등을 맞대고 사유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함께 애쓰는 동반자가 아닐까. 확장된 철학의 경계선에 의해 내부로 편입된 사유의 대상은 이제 물리학의 대상이 된다. 물리학은 그 경계에서 세상의 안쪽을 겨눈다.

철학자 칸트에 의하면 물리학은 선험적이면서 동시에 종합적인 학문이다. 물리학의 보편타당성은 그 선험성에서, 물리학의 확장 가능성은 그 종합적 성격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선험적 종합판단의 예로 칸트는 형이상학과 함께 물리학을 꼽는다. 그는 또 “형이상학은 이성의 체계가 아니라 이성의 한계에 대한 학문”이라는 멋진 말도 했다. 필자가 존경하는 물리학자 김두철은 한 강연에서 “현대과학의 역사는 과학 자체가 지닌 한계 발견의 역사”라고 했다. 물리학과 철학은 사유의 경계에서 쌍생성(雙生成·pair creation) 하는 걸까.

우주에는 모두 천억 개 정도의 은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우리 은하’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천억 개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 지구가 뱅글뱅글 공전하고 있는 태양은 또, 우리 은하의 수천억 개 별 중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변방의 한 별일 뿐이다. 여름에 멀리 교외에 나가 맑은 밤하늘을 쳐다보면 하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볼 수 있다. 원반 모양인 우리 은하를 납작한 면을 따라 옆에서 보면 당연히 별이 많아 밝아 보이고, 이게 바로 여름 하늘의 멋진 은하수다. 그중 우리 눈에 막 들어온 한 별의 별빛이 그 별에서 출발할 때 우리 조상은 아직 석기시대에 살고 있었다. 맑은 가을날 밤 맨눈으로도 보이는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 지구에서 약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지금 막 우리 눈에 닿은 안드로메다의 희뿌연 빛이 그곳을 떠날 때 우리 선조 유인원은 땅을 딛고 막 서서 걷기 시작했으리라. 티라노사우루스가 살았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동안 우리 태양계는 은하 중심을 둘러 기껏해야 공전 궤도의 4분의 1 정도만 움직였을 뿐이다. 지구가 우리 은하 전체를 한 바퀴 도는 것을 한 해라고 하면,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것은 12월 31일 밤 11시 30분쯤이고, 우리 모두는 우리 은하의 1년 중 한 4초쯤 살다 가는 셈이다. 공간적인 면에서나 시간적인 면에서나 우리는 정말로 티끌과 같다.

필자의 어린 시절, 커서 과학자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이 등골이 오싹해지는 우주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캄캄한 밤하늘에 보이는 예쁜 별빛과 나 사이에 가로 놓인 광대한 허공의 막막함에 대한 인식은 어린 마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깨달음은 우리 인간, 정말 티끌과 같이 작디작고 하잘 것 없는 인간이, 오로지 이성의 힘만으로 우주에 대해 일정 수준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티끌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 티끌이 광대한 우주 안에서 자신이 어떤 티끌이라는 것을 오직 지성의 힘만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어린 마음에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우리 인간이 원래 그냥 그렇게 만들어진 건데 뭘 더 알아낼 것이 있느냐는 종교적 맹목성에 비해 과학은, 인간의 지성이라는 나약하고 허접한 무기를 가지고 무한에 맞서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정말 소중한 어떤 것으로 보였다. 물리학을 공부해서 나중에 노벨상을 받고 싶은 마음도, 물리학을 공부해서 세상에 도움이 될 무엇인가를 만들겠다는 마음도 솔직히 없었다. 그냥 알고 싶었다. 내가 사는 이 광활한 우주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이 우주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사실 닭살이 돋아 이런 얘기를 동료 물리학자들과는 자주 하지 않지만, 필자 주변의 많은 물리학자가 여전히 마찬가지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과학연구 결과의 응용 가능성은 참 좋은 얘기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는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연구비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연구계획서를 제출하고 심사를 통해 연구과제가 선정되면 연구비가 지원된다. 과학자들은 이런 연구비가 피땀 어린 국민의 세금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 연구비가 당장 오늘 점심을 굶고 있는 아이들의 밥값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물리학과 같은 기초과학의 연구에 응용 가능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과학을 질식시키는 행위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인 일반상대론은 우리가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 위치 추적 장치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정확도를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근거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론을 만들어낸 이유가 그걸 100년 후 내비게이션에 쓰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중력의 비밀을 ‘알고자’ 노력한 거다. 만약 아인슈타인에게 거꾸로 위치 추적 장치에 쓰일 물리학 이론을 개발하라고 요구하고, 그 이론의 몇 년 후 경제적 가치를 예상해 연구 계획서에 적어 내라고 했다면, 십중팔구 우린 지금 내비게이션은 고사하고 일반상대론도 가지고 있지 못할 거다. 과학은 알고자 하지 쓰고자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여, 물리학을 공부하라.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 혹은 물리학의 성과를 멋지게 산업화하기 위해서일 필요가 전혀 없다. 바로 물리학의 눈으로 본 세상이, 그리고 물리학 자체가 눈이 시리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물리학을 통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 저 우주 어디선가 초신성의 폭발로 만들어진 바로 그 원자임을 깨닫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지금 창밖에 보이는 눈부신 봄날의 햇빛이 어떻게 어디서 만들어져서 어떤 과정을 통해 내 눈에 들어오는지 아는 사람은, 또 그 봄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더 잘 알 수 있다.

인간이 지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를 들라면 필자는 물리학을 그 첫째로 꼽겠다. 물리학자는 세상을 겨눈다. 바로 앞 조만큼이 아니라, 아스라이 보이는 저기 저 너머를. 바로 내일이 아니라,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먼 미래를 말이다. 내일 한 끼의 점심을 굶더라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100년 뒤 아니 1000년 뒤에도 여전히 의미 있을 질문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곳이 바로 우리나라였으면 좋겠다.

성균관대 교수

△1967년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 학사·석사·박사 △1997∼2002년 스웨덴 우메아대 박사 후 연구원, 조교수 △2006년 한국물리학회 선정 ‘용봉상’ 수상 △2005∼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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