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가장한 정치부패>‘우리가 남이가’… 인연 앞세워 청탁 들어주고 검은 돈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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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선고된 의원 비리 행태
보좌진 위장 취업시켜 월급
스스로 고문 등재후 1억 받아
명절·휴가·연말때마다 상품권

불법자금으로 카드대금 납부
변호사 수임 비용에 보태기도

“남의 청탁이나 부탁을 무조건 들어주는 정치권의 만성적인 부패 관행에 나도 모르게 빠져 버렸다.”

지난 1997년 한보 사태에 연루돼 법정에 선 황병태 전 의원은 “정치권 부패 관행이 날 망쳤다”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그런 지 18년이 지났지만 정치권의 모습은 그때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정치권 비리구조는 ‘합법성을 띤 부패’로 더욱 고도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비리 구조의 기저에는 학연, 지연 등 전통적인 인맥에서부터 정치권 인맥, 업무상 인연 등으로 결성된 친목모임 등 다양한 정치권 인맥이 존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혜와 금품을 주고받는 정치권 인맥은 ‘우리가 남인가’라는 비리 불감증을 공유하는 ‘관시(關係)’ 문화가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 “우리 정치에서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과거의 낡은 정치를 국민이 원하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19대 국회의원들의 판결문에는 이 같은 여의도 인맥의 양상과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22일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박 의원은 다양한 인맥을 총동원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 동업을 했던 기업인에게 부탁해 보좌진을 위장 취업시켜 월급을 주게 하고, 스스로 대학 후배가 운영하는 회사의 고문으로 등재 한 뒤 급여 명목으로 1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또 다른 보좌진은 자신이 이사장인 연구원에 취직시켜 실제 근무는 하지 않으면서도 6200만 원의 급여를 받게 했다. 사업으로 맺은 인연, 학연 등을 골고루 이용한 것이다. 박 의원은 1심에서 뇌물 혐의가 인정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으로 근무할 때 알게 된 기업으로부터 뇌물 등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1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고, 국회의원이 된 후 6000만 원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인정했다. 조 의원은 의정활동을 통해 이 업체에 도움을 준 후 돈을 받았고, 뇌물 받는 장소에 고등학교 선배를 대신 내보내기도 했다.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과 김재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치권 인사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사람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각각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송 의원은 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던 A 씨가 근무하고 있는 기업의 관계자를 소개받은 후, 이 회사에 도움을 주고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받았다. 송 의원은 A 씨가 김광재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전현희 전 의원을 통해 김민성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서종예) 이사장을 소개받았고, 김 이사장이 원하던 법안 통과를 도와주며 뇌물을 수수했다. 김 의원과 김 이사장은 만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오봉회라는 친목모임을 만들 정도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김 의원과 김 이사장의 관계를 잘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정치인은 자신이 개최하거나 관여하는 행사에 학생이나 아나운서를 동원할 필요가 있어 김 이사장과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며 “신학용 새정치연합 의원 출판기념회와 전 전 의원이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주최한 플래시몹 행사를 김 이사장이 도왔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은 불법적으로 받은 돈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김 의원은 연체된 카드대금을 납부하고 특별당비 용도로 사용했다. 1심 재판부는 김 의원이 돈을 받은 날 카드대금을 납부하고 특별당비를 납부한 것을 유죄의 근거로 판단했다. 김 의원은 또 김 이사장에게 받은 상품권을 다시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김 의원의 친척, 비서, 지인이나 지인의 부인이 서종예가 구입한 상품권을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조 의원은 변호사 비용으로 뇌물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조 의원에게 돈을 건넨 기업은 “변호사 비용에 보태라”며 돈을 줬다. 송 의원은 설, 추석, 여름휴가, 연말 등에 정기적으로 뇌물을 수수했다. 돈을 준 업체 관계자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 은빛 포장지로 돈을 포장해 줬다”고 진술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인은 금전적 후원이나 선거 지원 등을 바라는 것이고, 정치인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면서 서로 상부상조 한다”고 말했다.

조성진 기자 threem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