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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5월 22일(金)
‘공정경쟁’이 되려면… ‘종잣돈’을 지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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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넘어-정의를 위해 무엇을 할것인가 / 앤서니 B 앳킨스 지음, 장경덕 옮김 / 글항아리

지난주 미국과 영국에 나온 (거의 전 세계 동시 출간인) 앤서니 앳킨슨(71)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의 ‘불평등을 넘어(원제 Inequality)’는 지난해 전 세계를 들끓게 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의 후속 논의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불평등을 넘어’를 단순히 ‘21세기 자본’의 뒷자리에 둘 순 없다. 평가자의 주관적 가치 판단을 고려한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앳킨슨’ 지수로 유명한 앳킨슨 교수는 불평등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공공 정책에 깊이 천착해온 석학이다. 노벨 경제학상 단골 유력 후보이기도 하다. 피케티와의 인연을 살피자면 피케티의 멘토이자 오랜 공동 연구자로, 불평등 역사에 대한 이들의 연구는 ‘21세기 자본’에서도 주요한 실증적 논거로 언급된다. 이 같은 여러 이유로, 책은 나오기 전부터 전 세계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불평등을 넘어’가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21세기 자본’과 같다. 전 지구적으로 1980년대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지니 계수 등 경제 관련 데이터들을 추적해보니 1·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는 불평등이 뚜렷이 감소했지만 1980년 이후 격차가 확대되는 ‘불평등 회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피케티 역시 같은 분석이었다. 하지만 앳킨슨 교수는 훨씬 낙관적이다. “우리가 진짜 원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앳킨슨 교수의 믿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책은 이에 대한 답이다. 피케티가 오랫동안 주류 경제학에서 소외돼온 불평등과 분배의 문제를 경제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의 앞마당에 던졌다면, 앳킨슨은 이를 위한 구체적 정책 제안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보다 발전적인 의미를 갖는다.

앳킨슨 교수는 우리 시대는 왜 불평등과 싸워야 하고, 어떤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이는 우리 시대의 만연한 능력주의와 성공신화가 어떻게 불평등에 연결돼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흔히 평등이라고 하면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같은 출발점에서 출발하는 것, 즉 평평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시작하게 해주는 것을 평등이라고 한다. 같은 출발점을 보장해줬으니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를 캐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략 동의한다. 하지만 앳킨슨은 기회가 평등해도 결과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무시할 수 없고, 무엇보다 결과적 불평등은 그대로 다음 세대에겐 기회의 불공평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따라서 공정 경쟁이 이뤄지려면 경쟁의 성과 중 일부를 지속적으로 재분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정당해 보이는 이윤 창출에 제도가 개입해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경제적 불평등은 범죄, 질병 등 각종 사회 문제를 낳고, 정치 권력의 불평등과 연결되기에 극단적 불평등은 결코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밝힌다.

이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지난 100여 년간 불평등의 역사를 살핀 저자는 분배와 평등이 경쟁심과 성취욕을 꺾고 성장을 저해한다는 논리, 세계화 때문에 승자독식은 불가피하다는 패배의식에도 일침을 가한 뒤 불평등 해소를 위한 15가지 제안을 한다.

국민들이 18세, 성인이 될 때 교육이나 훈련, 주택 구입 할부금 또는 소규모 창업 자금 등에 쓸 수 있도록 지급하는 ‘기초 자본(최소한의 상속)’ 제도는 흥미로운 발상이다. 앳킨슨은 선행 연구와 제안을 참고해, 개인의 부에 세금을 부과해 마련한 자금으로 중산층 가구 연간 소득의 약 두 배에 이르는 액수의 자본을 성년이 됐을 때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퇴직 후 연금을 줄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출발점에서 기회의 평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기초자본의 논리이다. 이와 함께 15가지 제안에는 △1인당 보유 한도를 둔 국민저축 채권을 통해 저축에 대한 플러스 실질 금리 보장 △최고 65%에 이르는 누진세 같은 구체적 제안과 함께, 보다 광범위한 정책 방향도 포함된다. 결정자들이 기술 변화의 방향에 분명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근로자들의 고용가능성을 높이고 서비스 제고의 인적 측면을 강조하는 형태의 혁신을 장려해야 한다는 식이다. 부자 나라들은 공적개발 원조 목표를 국민총소득의 1%로 올려야 한다는 글로벌 사회 차원의 제안도 있다. 상당 부분 영국과 미국을 염두에 둔 제안이며, 파격적 누진제나 글로벌 원조 등은 현실적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불평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사회에 이들이 주는 시사점은 크다.

앳킨슨은 이들 제안이 각국 정부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중앙정부만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제안을 실행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개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유권자이자 로비스트이다. 동시에 소비자로서, 저축자로서, 투자자로서, 근로자로서 또 사용자로서 불평등의 크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정무역으로 제품을 거래하는 공급업체에서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역에 뿌리를 둔 가게를 지원함으로써 변화를 만들 수 있다.(중략) 개인적 삶에서뿐 아니라 경제 생활에서도 많은 도덕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불평등의 크기를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그는 밝힌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책을 썼다. 나는 우리가 빅토리아 여왕이 살았던 때와 같은 세계로 되돌아갔다고 믿지 않는다. 오늘날 OECD 국가의 시민들은 그들의 증조할아버지보다 훨씬 더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다 (중략) 1980년대 이후 우리가 불평등 회귀를 목격한 것은 사실이며, 고령화, 기후변화, 글로벌 불균형 면에서 여러 도전을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가 오늘날 더욱 거대해진 부를 이러한 도전에 맞서는 데 기꺼이 쓰려고 한다면, 그리고 자원을 덜 불평등하게 나눠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분명 미래를 낙관할 근거가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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