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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5월 22일(金)
불안을 없애려는 과정서 더 큰 ‘不安’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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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의 불안은 구체적인 대상보다는 사회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유발된다. 라캉이 불안을 정의할 때 이용한 사마귀(왼쪽)와 그가 분석한 ‘늑대인간’의 꿈 그림(가운데), 현대인의 불안을 잘 표현한 뭉크의 그림 ‘절규’.

불안들 /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엮음/후마니타스

북한이 지난 20일 ‘핵 타격 수단의 소형화’ 운운하며 남측을 협박했다. 한반도보다 더 불안한 지역이 있을까 싶지만, 북의 핵 위협에 잠 못 이루는 위정자나 시민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세계인들도 이슬람국가(IS)의 테러나 에볼라 바이러스, 지구온난화를 불안 요인으로 꼽아야 할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라캉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저자(53)가 책에서 인용하는 다섯 가지 현대인들의 불안 요인 중 첫째는 (돈, 사랑이) 충분하지 않다, 둘째는 사람들이 더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거부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머지도, 사람들이 내 허세의 실체를 알아챌 것 같다거나, 삶은 덧없다는 것 등속이다.

독자들은 어떤가. 곰곰이 살핀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별 차이는 없지 않을까. 우리 사회만 봐도 넘치고 넘치는 힐링과 자기계발은 바로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눈물겨운 몸부림이다. 돈에 관심을 줄여라, 진정한 자아를 찾아라, 너는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수시로 암기하라 등등. 그래서 불안이 해소되던가?

널리 알려진 ‘불안’(anxiety)의 정의는 라캉의 책(세미나 10권:불안) 중에 있다. 거대한 암사마귀가 나(사마귀)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수사마귀(먹잇감)인지, 암사마귀인지 알지 못한다. 라캉은 주체가 타자에 대해 자신이 어떤 대상인지를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그 자체가 불안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즉 주체와 대타자(타인과 사회의 상징적 관계망)의 관계에서 불안이 유발된다. 거대한 암사마귀인 대타자는 주체(사마귀)가 ‘나는 누구인가’, 특히 ‘대타자에게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 앞서 현대인들의 불안 요인을 라캉식으로 단순화하면,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치 및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다. 타인과 사회의 시선과 기준에서 나는 성공했는가, 나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불안해한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 이론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불안은 욕망하는 주체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피할 수 없는 근원적인 정서이다. 병리적 현상이지만 없앨 수 없는 본래적 현상이다. 주체가 대타자의 영역인 상징계에 진입하지 못하면 정신병이나 사회부적응자가 되듯, 불안은 상징계에 안착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빗금 쳐지는 주체의 숙명이며 정신병화되지 않았다는 징후이다.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는 후기 자본주의가 오히려 불안을 없애거나 통제해야 하는 것으로 다루면서 더 큰 불안의 병증을 낳는다는 점이다. 대중매체는 불안이 주체의 안녕에 궁극적인 장애물인 것처럼 인상을 심어 준다. 이런 과정에서 불안은 주체를 제어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이용된다. 주체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사회적 위치와 관계’라는 고리를 놓고, 후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주체들에게 자기 삶에 관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 자기 안녕에 대해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불안을 조장한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주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더욱더 무력한 주체로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취업난과 실직의 불안 탓에 스펙 쌓기, 몸짱 만들기에 정신없이 몰입하면서도 타자의 아픔에 대해 눈감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불안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동시에 더욱 불안을 느끼는 게 오늘날 시대의 역설인 것이다.

책은 이 같은 줄기를 다양한 사례로 풀어낸다. 저자는 슬로베니아학파답게 ‘X파일’ 같은 드라마들과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들, 미술작품, 각종 정신병리학적 사례들을 동원해 라캉의 이론을 지루할 틈 없이 현실과 조응해 준다.

엄주엽 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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