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난민 문제’ 한발 빼려는 동남아 국가들

1년뒤 송환 조건 임시피난처 제공 합의

서로 책임 회피… ASEAN 외교 시험대

로힝야족 보트피플 문제를 해결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3국이 20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긴급 외교장관 회의를 열어 로힝야족 난민 7000여 명에게 임시 피난처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1년 뒤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조건을 달아놓은 데다 회의에 참석한 타나삭 파티마프라곤 태국 외교장관이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도 않는 등 태국이 난민 지원에서 한 발 빼는 모양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미흡하다. 로힝야족 난민 위기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외교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동남아 국가는 최근 자국 해안으로 몰려드는 로힝야족 난민선을 공해로 쫓아내거나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등 필요 이상의 책임을 분담하는 것을 회피해왔다. 로힝야족 난민을 비롯한 밀입국자 유입으로 사회·경제적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회의 하루 전인 19일 완 주나이디 말레이시아 내무차관은 “수백만 명의 불법 이주자로 지역사회의 고용·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로힝야족 난민은 미얀마의 문제”라고 못 박은 바 있다. 또 레트노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은 “인도네시아는 유엔난민협약 미가입국인데 그동안 불법 이주민들을 필요 이상으로 받아줬다”며 한계에 봉착했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법무장관이 보트피플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난민선들이 필리핀 해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외교적 수사’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유엔과 국제 인권단체들은 동남아 국가들의 핑퐁 싸움에 대해 인도주의 손길을 외면하지 말라며 해결책을 촉구해왔다. 이들 국가는 특히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에 발 벗고 나섰던 유럽 국가들의 행보와 다른 모습을 보여 더 큰 비판을 받았다. 유럽연합(EU)은 영국과 스페인 등이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 독일과 스웨덴 등이 중심이 돼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고육책으로 난민 강제 할당제를 도입해 난민 유입으로 인한 부담을 회원국들이 분담하자는 제안을 내놓아 협의 중에 있다. 이 같은 차이점은 구속력 없는 협의체 역할을 하고 있는 아세안이 전통적으로 회원국들에 대해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20일 결정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힌 미국이 “미국도 로힝야족 난민을 재정착시키기 위해 선도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동남아국가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오는 29일 태국에서 로힝야족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태국이 미얀마를 비롯해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15개 관련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으나 미얀마는 아직 참가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29일 로힝야족 난민들의 삶을 구제하는 결정이 날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