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가장한 정치부패>단체장 출판회, 광역 3억-기초 1억 가뿐 ‘사실상 탈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인산인해 지난해 3월 울산 중구 남외동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한 지방선거 출마예정자의 출판기념회에 많은 지지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고 있다. 뉴시스

자치단체장들이 선거철만 되면 경쟁적으로 여는 출판기념회는 세(勢) 과시로 인지도를 높이려는 목적도 있지만 음성적 정치자금 모금 통로로 활용하기 위한 의도가 더 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단체장 역시 국회의원처럼 선거법상 선거일 90일 전에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으며, 책값(축하금)은 대부분 현장에서 현금으로 받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할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3∼6개월여 앞두고 부산에서는 무려 13명의 광역·기초단체장 후보자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같은 시기 대구에서는 광역·기초단체장 후보자 2명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대구지역 A 전 기초단체장 행사에는 무려 3000여 명이 찾기도 했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대구의 한 정치인은 “단순히 친분이 있으면 책값에 해당하는 2만 원을 내지만 이권이 있는 참석자는 500만∼2000만 원을 모금함에 넣는다”고 말했다. 광주지역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수십 만∼수백만 원을 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구시선관위 관계자는 “선거법상 출판기념회를 연 당사자는 수입·지출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의무가 없어 청탁이나 보은을 책값 명목으로 받아서 멋대로 돈 쓰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경기지역의 한 인사는 “지역 관혼상제 등에 암암리에 돈봉투를 건네는 등 개인적으로 쓸 돈을 마련하는 창구로 출판기념회가 악용되고 있다”며 “광역단체장은 3억 원 이상, 기초단체장은 1억 원대의 수입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책값으로 고액을 내는 참석자는 대부분 기업인”이라고 말했다.

이런 탓에 출판기념회의 책은 대부분 졸속으로 펴내는 경우가 많다. 경남 창원의 한 인사는 “원고지 5∼10장 분량으로 짧고 무리하게 행을 바꿔 쪽수를 늘린 책도 상당수이며, 실제 책을 펼쳐 보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단체장들은 대부분 친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아예 대놓고 자화자찬용으로 써달라고 부탁도 하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기본적인 원고나 자료만 주면 이미지에 맞는 것만 뽑아서 한 달 안에 책을 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통상 단체장 출판기념회의 책은 1만5000∼2만 원이며, 권당 40%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우리가 아는 한 출판기념회는 당연히 정치자금이나 비자금 조성 루트”라고 귀띔했다.

단체장들은 출판기념회에 소속 공무원을 동원해 물의도 빚고 있다. 충남의 B 단체장은 직원들을 시켜 출판기념회를 기획하고 업적을 홍보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충남의 한 공무원은 “충성도의 가늠자가 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단체장이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투명한 방법은 국회의원처럼 지지자들로부터 돈을 빌려서 선거에 사용한 뒤 선관위로부터 선거비용을 보전받으면 원금과 이자를 되돌려주는 ‘선거펀드’가 있다.

또 단체장은 후보자 등록 후 후원금으로 개인을 상대로 1인당 500만 원, 선거비용 제한액의 50%까지 모금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단체장에 출마했던 경북지역 한 인사는 “펀드나 후원금도 인지도가 높아야 활용할 수 있다”며 “선거에서 득표율이 10%에 못 미쳐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하면 쪽박만 차는 게 아니라 후원자들로부터 원성도 듣는 ‘도박’을 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10월 출판기념회 책의 정가판매와 개최 2일 전에 신고토록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현재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대구=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