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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5월 29일(金)
절필 선언한 거장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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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작 ‘네메시스’ 번역·출간
역자 “최후 저작의 특별함 없지만
로스답게 하던 일 하다 그만둔 셈”


“저는 다 끝냈습니다. ‘네메시스’가 제 마지막 책이 될 겁니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82·사진)가 2012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현재까지 그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미국 현지에서 2010년 발표된 ‘네메시스’는 그렇게 ‘거장의 마지막 저작’이라는 지위를 얻게 됐다. 1959년 ‘굿바이, 콜럼버스’로 데뷔한 로스는 50여 년간 서른한 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전미도서상과 전미도서비평가상을 각각 두 번, 펜·포크너상을 세 번 수상하는 등 영미권 주요문학상을 휩쓸었다. 그가 받지 못한 유일한 상은 노벨문학상이란 말까지 나온다.

왜 하필 로스는 이 책에서 그의 화려한 경력을 끝맺음하려 한 걸까. 번역자 정영목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겸임교수도 그 점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정 교수는 ‘옮긴이의 말’에서 일단 “마지막이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느낌은 크지 않았다”고 밝힌다. 하지만 오히려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럴 만한 때가 되면 그냥 그만두는 것이야말로 로스답다는 게 그의 판단. 정 교수는 “로스는 전과 다름없이,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끝까지, 가차 없이 밀고 나간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로스를 사랑하는 중요한 이유고, 그 점에서 로스는 마지막까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한다”고 썼다.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읽어낸 독자라면 누구라도 이 말에 동의할 듯싶다.

제목인 네메시스(Nemesis)는 사전적으로 ‘천벌’, ‘복수의 여신’이란 뜻이다. 로스는 이 의미를 “운명, 불운, 어떤 이를 골라 희생자로 만드는 극복할 수 없는 힘”이라고 했다. 소설에서 네메시스는 우선 폴리오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급성 회백척수염’으로 불리는 폴리오는 발열과 함께 두통·구토·근육통을 유발하며 신체마비, 심할 경우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급성 바이러스 전염병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향하던 1944년 여름, 미국 뉴저지의 뉴어크 지역에선 폴리오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당시는 이 병의 발생 원인과 전파 경로가 밝혀지지 않았고 백신이나 치료법도 없는 상황이었다. 감염자가 하나둘 늘면서 도시 전체는 순식간에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네메시스는 이제 사람들의 마음속에 싹튼다. 원인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면서 불신과 증오가 생겨나고, 적을 만들어낸다. 빈민층인 이탈리아인과 유대인, 지적장애인 등이 감염병을 퍼트리는 보균자로 지목돼 수모를 당한다. 사람들은 공중화장실과 공용 음수대, 공중전화 사용을 멈추고 우편을 받는 것조차 꺼린다. 질병 하나로 사회의 신뢰는 급속도로 무너진다.

이런 상황에서 체육교사이자 놀이터 감독인 23살 청년 버키 캔터는 의연하게 아이들을 돌본다. 다부진 체격에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그는 또래처럼 참전하고 싶었으나 시력이 좋지 않아 고향에 남았다. 동네 아이들을 지키는 것은 그에게 속죄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여자 친구 마샤는 폴리오 감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포코노 산맥의 인디언 힐 유대인 소년소녀캠프로 일자리를 옮기라고 그를 설득한다.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버티던 버키는 결국 인디언 힐행을 결정한다.

이때부터 버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아이들을 배반하고 스스를 배반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리를 옮기자마자 뉴어크 지역의 감염자 수가 크게 는다. 심지어 그가 있는 캠프에서 첫 환자가 발생하기에 이른다. 검사 결과, 버키는 바이러스 보균자로 밝혀진다. 곧 증상이 발현돼 그의 몸에도 마비가 온다. “하느님에게는 양심이 없느냐”며 신의 가혹함을 탓하던 그는 원망의 대상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마샤는 불구가 된 버키를 돌보려 하지만, 그는 완강히 거부한다. 사람들과의 접촉도 끊고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로스는 정말 끝까지 간다. 한 인물을 극단으로 몰아넣고, 그 비극적 운명을 통해 인간의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끄집어낸다. 그는 소설에서 진짜 네메시스는 폴리오가 아니라 폴리오로 인해 드러나는 인간의 나약함과 두려움이 아니냐고 묻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 큰 불안, 죄책감, 증오를 키우는 것은 인간의 슬픈 본성일까. 로스는 소설 속 스타인버그 박사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은 우리를 타락시켜.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게 자네의 일이고 내 일이야.”

유민환 기자 yoogiza@
e-mail 유민환 기자 / 정치부  유민환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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