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부부 이혼했더라도 손자는 좀 보게 해주세요”

‘맞벌이 직장생활’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손자·손녀의 양육을 담당하는 조부모가 늘면서, 자녀가 이혼한 뒤에 ‘손자녀만이라도 보게 해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현행법상 이혼 시 자녀를 볼 수 있는 면접교섭권은 부부 당사자에게만 있지만, 이를 조부모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아들의 이혼으로 인해 손자의 양육권이 며느리에게로 간 A 씨 부부는 ‘손자를 면접교섭할 수 있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A 씨 부부는 이혼 이후 업무로 인해 해외 장기근무를 하는 아들을 대신해 전 며느리에게 손자와의 만남을 계속 요청했지만, 며느리는 “아들의 아버지가 직접 면접 교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해왔다. A 씨 부부는 바쁜 아들·며느리를 대신해 손자를 1년 넘게 양육해 왔기 때문에 정이 남달랐다. 법원은 양육비와 위자료 일부를 A 씨 부부가 지원해 준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A 씨 부부의 손자 면접교섭권이 담긴 조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 관계자는 “최근 조부모가 손자녀를 보겠다는 내용의 면접교섭권 조정 신청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보통 이혼한 부부 중 한쪽이 면접교섭일에 아이를 데리고 조부모를 방문하는 식으로 만남이 이뤄지곤 했는데, 자녀가 바쁜 업무나 해외 근무 등으로 인해 면접교섭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자 직접 조부모들이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한국여성변호사회가 1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조부모 면접교섭권 확보를 위한 토론회’에서 박성만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현재 실무상으로도 조부모 등이 면접교섭을 청구하는 경우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하는 것이 아니라, 기일을 열어 면접교섭이 필요한 사유 등에 관해 심문한다”며 “아이들의 복리를 위해 필요성이 인정되고 부부와도 합의가 이뤄진다면 조정의 형식으로 조부모 등이 면접교섭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입법을 통해 조부모 등의 면접교섭권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과 그 범위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을 유추 적용해 조부모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다수가 입법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며 “부모와 자녀, 조부모 모두의 권리를 최대한 실현하는 방식으로 면접교섭권 청구 주체와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