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8일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용접 기술 실험실에서 작업자들이 사람 접근이 어려운 부분 용접을 위해 개발된 용접 로봇을 이용한 자동 용접 실험을 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 한진重
용접분야 R&D 열기…‘와이어 저항 기술’용접 시간 단축
- 현대重
고효율 ‘하이핀’ 개발… 1년 성능검증서 연료소모 2.5% ↓
- 삼성重
‘세이버핀’ 개발 적용…선체 진동 약 50%까지 감소 효과
- 대우조선
천연가스추진船 수주… 연료효율 높인 에코십 No1 도전
전체 넓이 330.578㎡(100여 평) 규모의 작업장 한 귀퉁이, ‘화라~락’ 용접봉 끝에서 하얀 불꽃이 연기를 내며 인다. 불꽃 끝에 철심이 순식간에 녹아 흐르며 1㎝가량 떨어진 두 강판 사이를 이어간다. 불과 1분여 사이, 20㎝ 길이 정도가 땜질로 이어졌다. “현대 용접에서 강도는 기본이죠.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자외선으로 인한 눈 화상을 막기 위해 보호대를 한 작업자의 말이다. 일반 강판 용접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1척에 1조 원 안팎에 이르는 대형 선박 이야기다.
선박 건조는 조각 맞추기, ‘레고’에 비유된다. 대형 선박 부분 부분을 제작해 용접으로 이어붙이는 게 선박 건조의 일이다. 그래서 설계와 용접은 선박 건조의 2대 기본 작업이며 건조기간은 가격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시간은 지난 8일 오후 2시쯤. 작업장은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조선소 독 한편에 위치한 용접기술 실험장이다. 조선 분야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우리 조선 기술의 현주소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찾았다. 부슬비가 내린 바다는 고즈넉했지만, 실험장은 용접봉 불꽃으로 뜨거웠다. 기술과 공구를 개발하는 열기로 달아올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펠러의 와류현상을 상쇄시켜주는 하이핀.
“이 작은 공구가 우리 기술력을 보여줍니다. 이 작은 공구에만 4개의 특허가 신청된 상태입니다.”
이정수 한진중공업 산업기술연구팀장(부장)이 용접봉 끝 철심을 감싸고 있던 길이 3, 4㎝의 가운데가 빈 작은 막대, 전문용어로 팁을 들어 보이며 말한다. ‘와이어 저항 열 증가 용접 기술’의 핵심 부품이다. 철심이 사전에 좀 녹아있도록 만들어 용접 시간을 크게 줄인 기술이다.
이 부장은 부산 특유의 사투리로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작은 부속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배가 되듯 이런 기술들이 모여 오늘 우리 한국을 조선 세계 1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한진중공업은 이런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산증인이다. 한진중공업의 영도 조선소는 지난 1937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다. 역사가 깊어 수많은 우리나라 조선 기술자들과 경영자들을 배출해 업계에서는 ‘한국 조선 사관학교’라 불린다.
약 26만5000㎡ 넓이의 영도 조선소는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리핀 수비크에 265만여㎡ 크기의 조선소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 필리핀이 갑자기 벌크선 수주 국제 순위 수위를 차지해 세계 조선업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바로 한진중공업의 성과다.
사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것은 한진중공업뿐만이 아니다. 최근 영국의 국제적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압도적 차이로 일본과 중국을 따돌리며 세계 선박 건조 수주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 조선업의 실력을 조망해 관심을 끌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빛나는 진정한 실력, 외신이 주목한 한국 조선업의 비결은 오직 하나, 바로 기술이다. 한진중공업만 해도 수중에서 용접하는 기술로 독보다 큰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댐공법, 초대형 선행탑재 블록을 제작해 이를 해상크레인으로 독에 옮긴 뒤 탑재하는 스키드공법 등의 기술들을 세계에 최초로 선보였다. 지난 4월에는 세계 처음으로 해상에서 선박에 액화천연가스(LNG) 연료를 주유하는 LNG벙커링선 건조를 수주해 설계 중이다. 선박 건조가 완료되면 한진중공업은 또 하나의 세계 최초 기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이라고나 할까. 맏형 한진중공업에 이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이른바 한국 조선의 ‘빅 3’는 경쟁국 일본, 중국이 두려워하는 강자다.
올해 세계 첫 2000척 선박 인도라는 세계적인 대 기록을 수립한 현대중공업은 올해 ‘하이핀’(HI-PIN·사진 빨간색 원) 등 고효율 선박 건조기술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하이핀은 프로펠러와 반대방향의 와류를 형성해 프로펠러의 와류현상을 상쇄해 추진효율을 높여주는 장치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월 그리스 마란가스사의 16만2000㎥급 LNG 운반선에 하이핀을 장착해 1년여 동안 실제 운항 선박에서의 성능 검증을 마쳤다. 하이핀을 장착한 선박은 최대 2.5%의 연료소모를 줄일 수 있다.현대중공업은 또 LNG 증발가스를 100% 활용한 가스처리시스템도 개발해 오는 2016년 인도되는 노르웨이 크누센사의 17만6000㎥급 초대형 LNG 운반선 2척에 처음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 대기오염물질인 황산화물을 92% 적게 배출하는 등 친환경 효과와 함께 연료 절감 효과도 크다.
삼성중공업 역시 선박 건조 기술에서는 둘째라면 서럽다. 삼성중공업은 △연료 소모량을 최소화하는 최적선형 설계 △폐열회수장치, 저온연소, 친환경 기자재 등 에너지효율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에 앞장서 왔다.
특히 LNG 추진선의 경우 만디젤(MAN Diesel)의 ME-GI 엔진뿐 아니라, 바칠라의 X-DF 엔진을 장착하는 LNG선도 수주함으로써 발주처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에너지절감장치(ESD· Energy Saving Device)의 개발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개발해 적용하고 있는 세이버 핀(SAVER-Fin)은 선박 외판에 장착하는 구조물로, 선체 주변 물의 흐름을 제어해 선박 운행 연료를 줄여주는 대표적인 연료절감 장치다. 이 장치를 장착한 선박에서는 최대 5%가량 연비개선 효과가 나타나고, 선체 진동도 약 50%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 삼성 중공업의 최대 경쟁자는 다름 아닌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부터 ‘천연가스 추진 선박’(ME-GI LNG선)을 본격 수주하며 연료 효율성과 친환경성을 높인 에코십(eco-ship) 건조의 세계 최강 자리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독일 엔진 메이커인 만디젤사와 공동으로 ME-GI LNG선을 개발했다. 선박엔진은 만디젤이, 천연가스를 연료화시키는 연료공급시스템은 대우조선해양이 개발해 지난 2013년 상용화에 성공했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현재 거제 옥포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천연가스 추진 LNG운반선’의 건조가 마무리되면, ‘천연가스 추진 선박’ 기술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관심도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설계는 용접과 함께 배를 만드는 기본 과정이며, 기술이 가장 많이 집약된 부분입니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어떻게 튼튼하게 유지하도록 하는가, 특수 목적에 맞는 선박을 어떻게 현실화되도록 하는가 등이 일류 조선사들이 시간을 두고 축적해온 고유 기술이며 가장 값진 자산입니다.”
부산 중구 충장대로 한진중공업 R&D센터에서 만난 유병석 한진중공업 기술연구소장(상무)은 최근 화학회사 연구소를 탐방하고 왔다는 기자의 말에 “조선산업의 연구소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며 조선산업 기술 개발의 특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흔히 회계 관행상 용접기술 등의 개발만이 연구·개발(R&D)비로 처리되지만 실제 새로운 배를 설계하면서 들어가는 모든 작업이 연구·개발 작업이라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으로 대변되는 한국 조선업은 말 그대로 ‘도전의 역사’입니다. 지금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박선호 기자 shp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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