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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5년 06월 24일(水)
인류의 知性도 메르스도 네트워크를 타고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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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조연수 기자 choys@

김범준의 과학이야기 - ② 네트워크 세상

가끔 하는 썰렁한 농담이다. 처음 방문한 유럽 도시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할까? 답은 “일단 로마로 간다”다. 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니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니 지금 길을 잃은 위치에서 당연히 로마로 갈 수 있다(끄덕끄덕). 그리고 일단 로마에 도착하면 로마는 또 모든 다른 도시와 길로 통해있으니 당연히 목적지가 어디든 로마에서 출발하면 어디라도 갈 수 있다.(또 끄덕끄덕. 이제 유럽에서 길 잃으면 경찰서 말고 로마로 가면 된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굳이 처음 로마로 갈 필요도 없다. 모든 길은 파리로도 통한다. 왜? 파리가 로마와 연결되어 있으니 한 도시에서 일단 로마를 거쳐서 파리로 가든 파리를 거쳐 로마로 가든, 어디서 출발하더라도 모든 길은 파리로도 통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어서 오직 로마만이 다른 모든 곳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당시 서양 사람들이 생각한 세계의 모든 곳(지중해를 둘러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일부)이 비로소 로마의 도로로 연결되게 되었다는, 로마제국에 의한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 네트워크의 완성을 의미한다.

두 개의 도시가 연결되면 마술 같은 일이 생긴다. 한 도시의 생산물을 다른 도시와 교환할 수 있게 되면, 연결되기 이전에 비해 두 도시의 생산 가능한 재화의 총합이 늘어난다. 이상적인 상황이라 현실과는 많이 다를 수 있지만 간단한 계산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도시는 자체의 생산력으로 하루의 절반 동안 빵 200개를 나머지 절반의 시간에는 버터 1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자, 또, 두 번째 도시는 하루 반나절에 빵 100개, 나머지 반나절에 버터 2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자. 만약 두 도시가 연결되어 물품을 교환할 수 있게 되면, 하루 종일 일 해서 첫 번째 도시는 빵만 400개, 두 번째 도시는 버터만 400개를 생산하면 된다. 이를 서로 교환하면 각 도시의 사람들은 사이좋게 200개 빵에 200개의 버터를 발라 먹을 수 있다. 교환 이전 두 도시의 전체 생산량인 빵 300개, 버터 300개에 비하면 늘어난 생산량이다. 도시의 연결은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보다 더 크게 만든다.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커지는 것은 도시만이 아니다. 사실 사람도 그렇다. 만 명의 사람이 으싸으싸 협력해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바위 덩어리를 혼자서 만 번에 옮길 수 있는 크기와 비교해 보라. 이집트 피라미드나 우리나라 북방계 고인돌이나,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고대인공구조물은 당연히 여러 사람의 조직적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말에 나오는 우공도 산은 자손대대를 동원해 조금씩 바위를 깨고 흙을 퍼서 옮길 수 있을지 몰라도, 피라미드는 고사하고 우리나라 고인돌도 혼자서는 세우지 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협력하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흩어진 둘이 따로따로 하는 일의 합보다 크게 마련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협력도 또,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보다 크게 만든다. 사람 사이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려면 당연히 의사소통, 즉 정보의 교환이 필요하다. 바벨탑 이야기에서 탑을 점점 더 높게 쌓는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방해하려고 “말을 섞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한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사람들이 뭉쳐 하나의 언어로 협력하게 되면 “사람들이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도 맞는 말이다.(그게 왜 신에게 문제가 되는지 필자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로 돕고 협력하는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를 통해 거둔 놀라운 성과(좋든 나쁘든)는 정말 눈부실 정도로 엄청나다.

사람이든 상품이든, 구체적인 무엇인가가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도로, 해상 운송, 그리고 항공 네트워크뿐 아니다. 이제 인류는 온 세상 곳곳이 연결된 전 지구적인 규모의 정보의 네트워크도 가지고 있다. 사실 로마제국의 도로 네트워크를 따라 움직인 것도 사람이나 물자만은 아니었다. 그 길을 따라 함께 전달된 제국 곳곳의 신속한 정보가 없었다면 로마제국이 그처럼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으리라. 사람이든, 도시든, 정보든, 연결되는 모든 것들은 연결로 인해 연결되기 전보다 질적으로 다른 가치를 갖는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듯.

다시 또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 얘기다. 로마제국이 완성한 도로 네트워크를 통해 크든 작든 당시의 도시들은 모조리 다른 도시들과 연결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제국의 수도 로마가 다른 작은 도시들과 도토리 키 재기 마냥 고만고만할 리는 없다. 생산력이든 인구의 규모든, 로마는 당시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한 도시였음은 틀림없다. 만약 로마든 다른 도시든 도시 하나하나를 똑같은 크기의 작은 동그라미로 그리고,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는 또 똑같은 두께의 선으로 이어 그린다고 해보자. 이렇게 로마시대 도로 네트워크를 그려보면, 로마는 다른 도시와 어떻게 달라 보일까. 이런 네트워크 그림에서 로마가 어떤 면에서 특별해 보일까.

연구그룹에서 필자와 함께하고 있는 조우성(28·성균관대 물리학과 대학원생) 씨와 이대경(24·〃) 씨가 우리나라의 고속버스 네트워크 (그림)를 그려주었다. 자, 이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길은 서울로도, 순천으로도, 그리고 밀양으로도 통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서울지역은 뭐가 달라도 달라 보인다. 뭐라도 숫자로 재야 직성이 풀리는 물리학자들은 네트워크에서 노드(연결선에 의해 연결되는 대상들. 도로 네트워크나 고속버스 네트워크에서는 도시나 고속버스 터미널이 노드다)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즉 네트워크에서 노드 각각이 얼마나 중심적(central)인 위치에 있는지를 재는 여러 가지 양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 노드가 몇 개의 연결선을 갖는지를 재는 ‘연결 중심성(degree centrality)’이란 거다. 그림의 고속버스 네트워크에서는 한 도시를 다른 도시들과 연결하는 버스 노선의 수가 바로 한 도시의 연결 중심성이다. 서로서로 친구인 사람들을 연결한 사람들의 네트워크에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친구의 숫자가 바로 연결 중심성이다. 어렵게 들리지만 별게 아니라, 아는 사람이 많은 ‘마당발’이 바로 연결 중심성이 큰 사람이다.

사실 다른 방식으로 재는 중심성(centrality)도 여럿 있다. 고속버스 네트워크의 임의의 한 도시에서 출발해서 도시 A로 오려면 몇 번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지를 재서 그 평균값이 작으면 A가 근접 중심성(closeness centrality)이 크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도시 모두를 다른 도시 모두와 연결하는 고속버스 경로를 모조리 구해서, 어떤 도시를 가장 많이 거쳐 가는지를 재는 매개 중심성(betweeness centrality)이라는 것도 있다. 도로망이든, 항공망이든, 사람들의 네트워크든, 주어진 네트워크에서 어떤 노드가 가장 중심에 있는지를 아는 것은 사실 아주 중요하다. 우리나라 고속버스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노드는 연결 중심성을 재나, 근접 중심성을 재나, 또 사이 중심성을 재나 당연히 하나같이 서울이다.(마찬가지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만 그렇다고 로마가 다른 도시와 같지는 않다. 모든 길은 다른 도시가 아닌 바로 로마로 가장 ‘잘’ 통한다.) 서울이 중심성이 크다는 것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서울의 근접 중심성이 크다는 말은,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 중 서울로 갈 때가 가장 적은 숫자로 고속버스를 갈아탄다는 뜻이다. 서울이 매개 중심성이 크다는 말은 우리나라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버스를 갈아타며 이동한다면 서울을 거쳐 가는 사람이 가장 많다는 뜻이다. “자식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굳이 가라고 등 떠밀지 않아도 자식이 이리저리 여행하다 보면 어차피 서울에 자주 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물자나 사람의 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울 같은 교통 네트워크의 중심도시는 또, 병원균의 전파에서도 중심 도시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은 경부선의 남북축을 따라 최근의 메르스가 초기에 전파되었다는 것도 사실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갑자기 감염자가 늘어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감염환자들의 이동의 네트워크에서 서울의 대형병원이 당연히 앞에서 설명한 여러 의미에서 가장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지역 간 실제 통행량에 근거한 과학적인 전염병 확산 모형을 만들고 그 모형 위에서 다양한 방역 시나리오를 테스트해보려는 시도가 이미 외국에서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응급환자 이송의 효율적인 네트워크는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치료제 없는 병원균도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효율적으로 이동한다. 앞으로는 점점 더, 모든 것들이 다른 모든 것들과 더 강하게 연결될 것이다. 이렇게 연결된 전체가 만들어낼 새로운 가치가, 마찬가지로 같은 연결이 만들어낼 위험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앞으로 점점 더 연결되는 것은 사람들의 지성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점점 더 연결된다. 서로서로 연결된 지성은 민주적인 논의와 협력을 통해 더 훌륭한 사회의 지성이 된다. 역시 또, 하나하나 예쁜 반짝반짝 구슬도 여럿을 연결해 잘 꿰면 전체는 더 아름다운 보배가 된다. 물론, 어떤 실로 어떻게 꿰어야 더 아름다워지는지 알아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문화일보 5월20일자 24면 ①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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