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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게재 일자 : 2015년 06월 24일(水)
자연 품은 돌다리 사람들의 흔적들 1000년을 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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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진천군 세금천 위에 놓인 농다리를 탐방객들이 지나고 있다. 농다리는 많은 비가 오면 물이 넘쳐 흐르도록 만들어져 오랜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버텨 왔다.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충북 진천 농다리~초평호

땅 위에 물이 생기고 생명이 태어났다. 물은 흘러 내려와 강을 이뤘고 주변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왕래와 소통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를 놓았다. 통나무를 갈라 가로지르거나 큰 돌을 놓기도 했다. 어느 다리는 자주 큰물이 쓸어갔지만 어느 다리는 긴 세월을 견디며 발자국을 몸에 새겼다. 이 땅에는 1000년을 견뎌 온 다리도 있다. 진천 세금천(洗錦川)의 농다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언뜻 보면 그저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이 다리는 오랜 역사만큼 수식하는 말도 많다. 동양 최고(最古)의 다리, 자줏빛 지네, 전설의 다리…. 고려 고종(재위 1213∼1259) 때 권신이었던 임연이 놓았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봐서 고려 말쯤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엉성해 보이는 돌다리가 홍수와 침식의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로 찾아간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말이 있다. 흔히 ‘살아서 진천, 죽어서 용인’이라고 풀이하는데, 진천이 그만큼 산수가 좋고 살기에도 좋다는 뜻이겠다. 세금천 앞에 서서 그 뜻을 새기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오랜 가뭄에 시달렸을 텐데도 냇물은 여전히 유장하게 흐른다. 농다리 위로 쉽사리 발을 내딛지 못한다. 무언가 의식이라도 치르고 지나가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다. 1000년의 시간을 침묵으로 증언하는 다리. 아무 말이 없으니 무게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 다리를 자줏빛 지네라 부른다더니, 언뜻 봐도 실감 나는 표현이다. 숱한 발이 달린 지네가 꿈틀거리며 내를 건너는 형국이다. 시간은 돌 위에 지나온 내력을 새겨놓았다. 돌 틈의 이끼로도 보여준다. 그 위에 첫발을 딛는다. 돌이 투박한 인사로 맞는다.

▲  농다리 인근 민가의 마당 위로 떨어져 내린 능소화.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번듯하게 솟아오른 교각은 아예 없다. 돌을 멀끔하게 깎아서 얹은 것도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돌이 쌓여 교각이 되고 상판이 됐다. 큰 돌 사이에는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그러다 보니 듬성듬성 틈도 있고 밟으면 밟는 대로 삐걱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대충 만든 다리가 아니다. 그랬다면 그 긴 세월을 견뎠을 리가 없다.

농다리에는 과학적 원리가 들어 있다. 우선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안으로 차곡차곡 들여 쌓아 교각을 만들고, 크기가 다른 돌을 적절히 배합해 서로 물리게 했다.

위로 갈수록 폭을 좁혀 빠른 유속을 견딜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타원형의 교각은 물살의 압력을 최대한 피하고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장마 때면 물이 다리 위로 넘쳐 흐르도록 수월교(水越橋) 형태로 만든 것도 장수의 비결이다.

지네가 기어가듯 구불거리는 모양 역시 빠른 물살을 고려한 설계다. 물과 돌. 서로의 부딪힘과 저항을 최소화해 상생을 도모한 선조들의 지혜에서 오늘을 살아갈 교훈을 얻는다.

돌이 품은 1000년의 기억을 몸에 들이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리고 내 발자국을 그 위에 더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묵직한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다. 단번에 지나가는 게 아쉬워 몇 번이고 왕복한다. 나는 지금 지네의 등 위를 걷고 있는 셈이다. 다리 길이가 100m도 안 되지만 천천히 걸으니 제법 오래 걸린다.

이쪽 언덕에 서서 걸어온 곳을 돌아본다. 지네는 여전히 꿈틀거리며 물을 건너고, 그 위로 저만치 고속도로가 보인다. 쌩쌩 소리를 내며 달리는 자동차들과 긴 세월을 삼키고서도 조용한 다리가 대조적이다. 농다리 주변을 조망하기 좋도록 만들어 놓은 천년정으로 오른다.

멀리서 보니 돌 위에 새겨진 사람의 흔적이 더욱 선명하다. 그동안 지나다닌 사람들이 손이라도 흔들며 걸어 나올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늘 무언가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새삼 조심스러워진다.

▲  충북 진천군 농암정 위에서 내려다본 초평호.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 오른쪽에 보이는 길은 농암정 위로 오르는 등산로.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초평호까지 걷는 1.7㎞의 초롱길은 천년정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산 위에 있는 농암정을 거쳐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 초평호를 끼고 수변 탐방로가 이어진다.

농암정으로 가는 길에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올 들어 처음 듣는 것이다. 마음 급한 녀석이 앞질러 나왔구나. 반가움에 앞서 땅속에서 보냈을 인고의 시간을 생각한다. 세상에 무엇 하나 그냥 이뤄지는 것은 없다. 1000년을 견뎌온 농다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쇠인들 녹슬어 삭아 내리지 않으랴. 누군가 알게 모르게 보수하고 지켜왔으니 오늘이 있었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일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하는 법이다.

농암정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파르다. 하지만 나무 사이로 보이는 세금천의 풍경에 반해 힘든 줄도 모른다. 정자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인다. 이 순간을 위해 많은 사람이 부득부득 위를 향해 오른다. 오래 닫혔던 문을 열어젖히듯 가슴을 활짝 연다. 쌓였던 근심과 잡념이 훌훌 날아가는 기분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손바닥만큼 작게 보인다. 고속도로 역시 풀어진 넥타이만큼이나 가늘어져 있다. 그래, 사는 게 별거더냐. 이렇게 털어내며 조금씩 걸어가는 거지.

▲  오랜 가뭄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수량을 유지하고 있는 초평호에서 낚시꾼이 이른 아침 낚시를 하고 있다.
농다리가 저만치 내려다보인다. 반대쪽으로 돌아서면 초평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호수가 되기 전에는 농다리를 건너 대처로 오가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었을 것이다. 호수 한가운데 황소처럼 길게 누운 ‘반도(半島)’에 오래 눈길이 간다. 멀지 않은 두타산에서 바라보면 국내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의 한반도 지형이라고 한다. 만주벌과 제주도 형상까지 있다니 한번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등산이 목적이 아니니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농암정에서 내려와 언덕으로 오르면 성황당이 나온다. 떡갈나무에 감아 놓은 오색천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용고개 또는 살고개라고 부르는 이곳에는 시주를 거절한 마을 사람들과 그를 보복한 스님의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가난한 시절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에 가슴에 돌 하나가 얹힌다. 비극으로 끝나는 전설에서, 나무 아래 쌓아 놓은 수많은 돌에서 이름 없는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을 본다.

조금 내려가면 호수가 시야 가득 들어오고 야외음악당이 나타난다. 여기가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조금 가파른 임도(林道)가, 오른쪽으로 가면 호수를 끼고 반 바퀴 도는 수변 탐방로가 시작된다. 어느 길을 택해도 최종 목적지는 하늘다리지만 호수와 좀 더 가까운 오른쪽 길을 택한다.

길을 잘 만들어 놓아 누구든 걷기에 좋다. 숲과 호수 사이를 걷는 내내 아름답고 호젓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고 뻐꾸기 소리가 뒤를 따른다.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호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초 사이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다니는 것이 보인다. 광복 이후 축조해 1985년 증설했다는 초평호는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의 담수량을 자랑한다. 상공에서 보면 용이 한반도를 등에 업고 두타산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여의주를 찾아 승천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곳곳에 명소가 숨어 있는 이곳은 얼음낚시와 붕어낚시터로 유명하다.

길은 호수의 외곽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길이 앞서가니 나는 다만 따라갈 뿐이다. 중간에 농암정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초반에 갈라진 임도에서 내려오는 길일 게다. 길은 그렇게 헤어지고 또 만난다. 카약을 탄 젊은이 하나가 쏜살같이 물을 가르며 지나간다. 발달된 상체 근육과 속도로 볼 때 전문 선수가 틀림없다. 아! 사람의 힘만으로 배가 저렇게 빨리 갈 수도 있구나. 고요하던 호수가 부스스 깨어나며 활기를 띤다. 카약 하나가 풍경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걸음에도 부쩍 힘이 붙는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탑이 우뚝 솟은 사장교가 다가선다. 호수가 갈라 놓은 ‘육지에서 반도’로 건너가는 다리다. 다리 상단에 하늘다리라고 큼직하게 써 붙였다. 하늘다리… 정말 하늘까지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는다. 다리는 적당히 출렁거린다. 아래로 보이는 물이 시퍼렇다. 담이 약한 사람은 무섭다고 호들갑이라도 떨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무서울 정도는 아니다. 시선을 어느 곳에 던져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림 같다는 표현은 이곳을 위해 준비된 것 같다.

다리를 건너 쉼터에서 걸음을 멈춘다. 오른쪽으로 더 가면 두타산이 나온다. 붕어마을도 멀지 않다. 대개는 이곳에서 온 길을 되짚어 농다리로 돌아간다. 음료수를 사 들고 매점 앞 파라솔에 앉아 느긋한 시선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와 암청색으로 빛나는 산들, 물 위를 오가는 낚싯배, 뺨을 스치는 바람….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이 순간만은 신선이 부럽지 않다. 시간은 혼자 흐르게 놓아 두고 구름과 바람과 새 소리 속으로 풍덩 빠져든다. 몸은 가볍고 마음은 새로 채운 에너지로 충만하다. 풍경 한 자락 싸들고 도시로 돌아가면 거친 시간을 건너가는 힘이 될 것이다.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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