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강릉의료원 소독 강원도 내 국가지정 격리병원인 강릉의료원 간호사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179번째 환자로 확진된 가운데 24일 오전 강릉시 방역 관계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병원 내 소독을 위해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병실료 부담에 다인실 이용
다닥다닥 좁은 공간 답답해
커튼 치는 병상 거의 없어
어수선한 6인실 냉장고엔
환자 먹던 음식이 그대로
마스크 등 보호장구 없이
24시간 가족 간병도 여전
23일 오후 찾아간 서울 강북 지역 A 대형병원은 입구에 들어서자 마스크를 쓴 4명의 의료진이 방문객의 체온을 재고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입구에 설치된 간이책상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면회와 방문을 제한하며, 보호자의 경우 출입증을 소지한 한 사람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공지가 붙어있었다. 얼핏 보면 메르스 차단을 위해 방문객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 같았지만, 막상 간단하게 체온과 이름을 적은 뒤 “병문안을 왔다”고 하자 별다른 제지 없이 병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병실과 복도를 활보해도 누구 하나 제지하거나 주의를 주지 않았다.
메르스 사태 때 감염병을 확산시킨 요인으로 병문안이나 간병인 등 한국의 독특한 병원 문화와 다인입원실·응급실의 과밀한 병원 환경 등 부실한 의료 시스템이 꼽혔지만, 아직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일보 취재진이 서울지역 대형병원 3곳을 확인한 결과 메르스 사태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6인실에는 환자의 음식을 공유하거나 과도한 병문안을 하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포착됐다.
◇빽빽한 다인실=6인실이 모여있는 A병원 10층. 병실 안에는 약 1m 간격으로 병상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더욱이 간병인과 보호자가 사용하는 간이침대가 중간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어 환자와 환자, 환자와 보호자는 작은 움직임에도 동선이 겹쳤다. 병상 사이에 공간을 나눌 수 있는 커튼이 있었지만 좁은 공간이 답답한지 커튼을 치고 있는 병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6인실의 경우 환자 모두가 병실당 하나씩 배정된 냉장고를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한 병실에서는 입원 환자들끼리 과일을 깎아서 나눠 먹은 뒤 남은 과일을 그릇에 담지 않고 쟁반째 넣어두기도 했고, 1.5ℓ 페트병에 담긴 음료는 네 것 내 것 할 것 없이 서로 컵까지 공유해가며 나눠 먹고 있었다. 사정은 B 대형병원도 마찬가지였다. B병원 6인실 환자의 보호자 주모(31) 씨는 “메르스 때문에 위험하긴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다인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실제로 이 병원의 하루 입원료는 6인실의 경우 건강보험을 이용하면 본인부담이 1만2430원인데 반해 2인실은 20만2430원, 1인실은 43만 원, 특실은 54만 원으로 크게 차이가 났다.
◇여전한 병문안·간병 문화=메르스 확산 이후 ‘떼 문안(여러 명이 한꺼번에 병문안을 가는 것)’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C 병원 내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모(61) 씨는 “예전에는 병문안용 음료를 하루에 15∼20박스씩 팔았는데, 요즘은 떼문안이 줄면서 매출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르스 위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병문안을 오는 발걸음은 크게 줄지 않았다. A 병원 1∼2인실이 배치된 6층에는 이날 갓난아이를 업은 한 여성이 마스크를 쓴 채 병문안을 왔다. 감염 위험이 높아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는 마스크도 없었고, 이 여성마저도 문안을 간 환자를 보자 단숨에 마스크를 벗고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24시간 환자의 곁을 지키는 간병 문화도 여전했다. C 병원에서 딸을 간호하고 있다는 김모(여·64) 씨는 “C 병원이 안심병원으로 지정됐다고 하지만 아직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사고로 아직 움직이는 게 불편한 딸을 혼자 둘 수 없어 마스크를 쓰고 간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병원에서 전문 간병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모(여·60) 씨는 “메르스로 다들 불안해하긴 하지만 가족들이 간병을 중단하거나 간병인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어느 누가 환자인 가족을 병원에 홀로 두고 마음이 편하겠느냐”고 말했다.
◇응급실 실태=메르스로 인해 대부분의 대형병원이 응급실 통행을 제한하고 있지만, 응급실 자체의 환경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B 병원 응급실 내부의 보호자 대기실에 들어가니 21개의 의자에 4명의 환자가 수액을 맞으며 앉아있었다. 이들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옆에 앉은 보호자와 대화를 나눴다. 응급실 내 중환자들을 별도로 관리하는 관찰구역 내 환자 2명 옆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보호자가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응급실 내부의 화장실에선 소변 채취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보호자가 환자와 동행하면서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병원 환경이 호흡기 질환자의 감염병 확산에 취약하다 보니 호흡기 질환자를 위한 별도 격리실 설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우리나라 병원 응급실이나 다인입원실 문화는 (전염병 확산에) 심각한 환경”이라며 “정부나 국회가 병원 선진화에 투자할 결심을 했다면 응급실과 중환자실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병원이나 국립대학교병원은 직접 시설투자비용을 지원해주고, 민간병원은 진료수가로 보상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도연 미국 앨라배마대학병원(UAB) 이비인후과 조교수는 “다인실의 비중을 줄이고 병원을 오로지 환자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병문안은 보호자만 가능하게 하고 이웃이나 친지들의 방문은 퇴원 후로 미루는 등 일반인들의 병원 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다영·노기섭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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