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新질서… 韓·美동맹 상수로 中·日 균형외교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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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한 올해 동북아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발원지는 중국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정세 변화를 빌미로 미국과 공동전선을 펴면서 미·일 대 중국의 대결구도가 갈수록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중국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대국으로 급부상하면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70년간 유지돼온 지역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중국이 2012년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을 건조하는 등 군사력을 증강, 해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전략을 채택하면서 전통적 해양세력인 미국·일본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물론, 한반도 역시 이런 지역적 변화의 영향권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외교의 대응 전략이 남북 관계는 물론, 한반도 통일과 생존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 제언
“中 부상 日에 힘의 역전… 동북아 현상유지 균열”
“美·中 패권 격돌 구도가 日·中 대리전 형태 연출”
“韓日관계가 좋아진다고… 韓中관계 나빠지지 않아”
“4강관계 이해 엇갈려… 韓, 전략적 중심 잡아야”

미국과 일본의 충돌은 올해 들어 더욱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이 아베 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신(新)밀월 관계를 형성, 미국을 확실히 등에 업으면서 동북아에서는 미·중 격돌이 중·일 대리전 형태로 연출되고 있다. 미·중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남중국해에서도 일본은 센카쿠(尖閣)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가 “미·일 안보조약 대상”이라는 미국 측 유권해석을 끌어내면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이 미국과 연합, 동북아에서 중국이 패권국으로 일어서는 것을 최대한 견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미·일 대 중·러의 기본적인 냉전 구도가 겹치고, 중·일, 미·러 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히면서 한반도는 광복 70년 및 6·25전쟁 65년 만에 또다시 4강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십자로에 서게 됐다. 25일 전문가들 사이에 “한·미 동맹을 상수로 하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외교 정책을 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배경이다.

◇동북아 ‘현상 유지’ 깨지면서 좁아지는 한국 입지=아베 총리가 중국과 각을 세우는 것은 중국이 2009년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전 세계 2위였던 일본을 역전하면서 거세진 ‘중국위협론’에 따른 불안감 때문이다. 전후 일본이 유지해온 지역에서의 주도권이 경제권력 이양과 함께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아베 총리는 ‘한국의 중국 경도론’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국제사회에 유포하면서 한국까지 싸잡아 견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는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평화헌법 개정 추진으로 이어지면서 일본의 ‘정상국가화’, 더 나아가 재무장으로 이어지는 명분이 되고 있다.

한국 외교는 역량을 평가받는 실험대에 놓이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핵심으로 한 과거사·영토 문제가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 한쪽으로의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한·미 간에 이견을 드러내는 단초가 됐고, 이로 인해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시도 역시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잇따라 감지되고 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사드 문제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내정 간섭에 가까운 압박을 받았고, AIIB 문제에서도 미국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가입을 선언했다. 이원덕(국제학) 국민대 교수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동북아 지역이 세력전이라는 급변 과정에 놓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이 전략적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동맹 상수로 중·일 간 균형 전략이 해법=이 때문에 한국이 어느 때보다도 원칙에 기반을 두면서도 국익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외교 전략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 기본이 한·미 동맹이라는 데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거의 없다. 양기호(일본학) 성공회대 교수는 “동북아 문제에 있어 한·미 동맹에 중점을 두면서 중견 외교국가로서 선도하는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일 사이에서 한쪽을 택해야 한다는 사고를 버리라는 조언도 적지 않다. 송화섭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우리에게 중국과 일본 모두 이웃국가니까 안보 측면에서 똑같이 협력을 증진해 나가야 한다”면서 “한·미 동맹을 상수로 해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 정책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안보 면에서 미국의 반대편에 설 수 없는 나라지만, 외교 측면에서는 항상 중·일 양쪽을 균형 있게 끌고 가는 나라가 돼야 한다”면서 “지금까지는 중국 편에 너무 쏠려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원덕 교수도 “한·일 관계가 좋아진다고 한·중 관계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며, 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한·중·일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일 갈등뿐 아니라 중·일 협력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중·일이 갑자기 협의를 해서 동북아 질서를 이렇게 하자 해버리면 우리가 손 쓸 길이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미·일 동맹 등과 같은 진영 논리로만 바라보지 말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대한 적극적 책임과 희생정신을 갖고 우리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보영·인지현·유현진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