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 이야기… 가장 새로운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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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로, 가장 새로운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오는 16일 공식 개막하는 뮤지컬 ‘아리랑’(사진)의 프리뷰(관객의 반응을 보기 위한 사전 공연·7월 11∼15일)에 대해 단 한 줄로 토해 낸다면 이것이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올여름 최대 기대작으로 꼽혔다. 우려도 컸다. 3년의 준비기간과 50억 원의 제작비, 12권이라는 방대한 원작의 무게감, 수없이 반복된 콘텐츠(아리랑)가 주는 진부함….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내 대표 뮤지컬 제작사인 신씨컴퍼니(대표 박명성)와 연극 ‘푸르른 날에’와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으로 공연계에 큰 방점을 찍고 있는 연출가 고선웅이 손을 잡았다. 공연계를 넘어 문화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뮤지컬 ‘아리랑’이 베일을 벗었다.

◇슬픈데, 슬프지 않다 = 피아노 반주에 맞춰 서정적인 노래가 흐른다. “나는 득보 사랑허쟤/나도 수국이 사랑허쟤.” 꼭두각시극 같은 몸동작. 익숙한 듯 낯설다. 우스꽝스러운데, 웃음이 안 난다. 죽음과 변절로 시작된 ‘아리랑’의 초반부는 슬프다. 그러나 ‘빵’하고 터지는 울음은 없다. ‘애이불비’(슬프지만 슬픔을 나타내지 아니함)다.

소설 속 수백 명의 개인사는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주요 인물은 송수익(안재욱·서범석), 양치성(김우형·카이), 방수국(윤공주·임혜영), 감골댁(김성녀), 차옥비(이소연), 차득보(김병희·이창희). 원작은 일제 침략부터 해방기까지를 다뤘으나, 뮤지컬은 1920년대 말까지 한정했다. 송수익과 감골댁은 무대 위 정신적 지주·어른 역할을 한다. 양치성과 방수국의 파란만장한 삶은 삽입곡처럼 “숨통이 막히고/목구멍이 메인다.”

소리꾼 차옥비에 국립창극단 단원 이소연을 캐스팅한 건 ‘신의 한수’. 고마다(정찬우)에게 능욕을 당하며 뽑아내는 ‘소리’가 앙상블의 ‘풀이 눕는다’와 함께 처연하게 울려 퍼지고, 송수익은 “죽을 것 같아도 죽지 마라”고 부르짖는다. 한국인의 정서를 관통하는 창(唱)의 힘에 소름이 돋는다. 이것은 거대한 진혼곡 아닌가.

◇아무것도 없으면서, 꽉 차 있다 = 무대는 단순하다. 특별한 소품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비어 보이지 않는다. 30여 장면의 배경은 대형 LEC 스크린이 표현한다. 영상은 마치 추상화와 같다. 시공간적 설명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정서를 표현하는 데 주력한 것. 여인네들이 쌀알을 골라내는 장면에선 쌀알이 마치 꽃잎처럼 떨어지고, 차옥비가 고마다에게 겁탈을 당할 때엔 새장에 갇히는 한 마리 새를 그린다. 또 양치성이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에선 스크린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다. 여기에, 마와시(스모 선수의 샅바)를 두른 남성이 북을 치며 배경음악을 ‘보여줄’ 뿐이다.

일본어 대사와 노래를 세로형 자막으로 구현한 것도 신선하다. 도깨비 문양 부채, 가면, 북 등 ‘고선웅 연극’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소품들이 어떻게 새 생명력을 얻는지도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여럿인 듯, 여럿이 한 사람인 듯 = 주요 인물 6명이 등장하지만, 특별히 도드라지는 사람은 없다. 창작 진이 왜 “모두가 주인공”임을 강조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민초들의 이야기인 ‘아리랑’에서는 ‘앙상블’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사내 역에 7명, 아낙 7명, 일본군 7명 등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전체 극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이들이 있기에, “떠난다고 떠나질 땅이여/잊는다고 잊어질 땅이여/돌아와야 혀/어떻게든” 이라는 1막의 마지막 합창이 슬픔을 뛰어넘는 거대한 에너지로, 송수익의 형장에서 벌어진 비극적 종말도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먼저 일어난다”는 희망의 노래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작곡 김대성, 무대 박동우, 의상 조상경 등. LG아트센터, 9월 5일까지. 1544-1555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