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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5년 07월 22일(水)
애초에 敵을 만들지 말라… 미움은 사랑보다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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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③ 관계의 비대칭성

그리스 신화의 아폴로와 다프네 얘기를 들어 보았는지. 활쏘기의 명수인 아폴로는 작고 귀여운 활을 쏘는 큐피드를 놀리다 약이 오른 큐피드의 금 화살을 맞는다. 큐피드는 또 납 화살을 쏘아 아름다운 요정 다프네를 맞힌다. 금 화살을 맞은 아폴로는 다프네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어 계속 그 뒤를 쫓고, 납 화살을 맞은 다프네는 아폴로를 극도로 싫어해 도망다니다 결국 그녀를 불쌍히 여긴 강의 신에 의해 월계수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 우리 모두 겪어본 일이다. 난 쟤가 좋은데 왜 쟨 날 싫어할까. 비단 남녀관계뿐이겠는가. 직장이면 직장, 학교면 학교, 친해지거나 같이 일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 해서, 그 사람도 나를 마찬가지로 생각한다는 보장은 없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 복잡계 학회에서는 매년 11월 마지막 토요일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몇 년 전 김대중(40·동국대 선임연구원) 박사의 흥미로운 연구 발표를 접하게 되었다. 한 기관 구성원들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다섯 명, 그리고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다섯 명에 대해 묻고 이를 이용해 사람들 사이의 좋고 싫어하는 관계의 익명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를 분석한 연구였다. 발표를 재미있게 듣고 김대중 박사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했고, 이후 필자 연구그룹의 박혜진(27·성균관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씨와 이수도(32·부경대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박사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그림1의 네트워크가 바로 연구에 사용된 익명의 자료를 이용해 그린 것이다. 만약 구성원 A가 B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면 그 관계를 A에서 B로 향하는 파란색 화살표로, 반대로 A가 B를 싫어한다면 붉은색 화살표로 표시했다. 또, A를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보다 많으면 A를 파란색 동그라미로, 거꾸로 A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붉은색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많지는 않지만 흰색 동그라미는 A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정확히 같은 숫자라는 뜻이다.

그리 크지 않은 네트워크이지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파랗고 붉은색 화살표를 각각 다섯 개씩 내보내니 전체 그림을 그려보면 이처럼 복잡해 보여 한눈에 네트워크의 특성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그림의 가운데에 몰려있는 붉은색 동그라미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붉은색 화살표를 받고 있는 것이 보인다. 즉, 대여섯 명의 소수 사람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복잡한 그림도 원하는 정보만 골라 간략하게 다르게 그리면 더 명확한 얘기를 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친구가 많은 사람(즉, 다른 사람들로부터 파란색 화살표를 많이 받는 사람)의 순서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사람들을 줄 지워 세워놓고, 세로축의 플러스 쪽에는 친구의 숫자를, 마이너스 쪽에는 적의 숫자(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붉은색 화살표의 수)를 막대그래프의 형태로 그린 것이다. 먼저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실은 친구가 많은 사람은 적이 거의 없고, 적이 많은 사람은 친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살면서 피부로 느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이처럼 실제의 자료를 이용해서 정량적인 결과로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친구의 숫자를 보여주는 파란색 막대는 천천히 줄어드는 데 비해 적의 숫자를 보여주는 붉은색 막대는 마지막 부분에 급격히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즉,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친구의 숫자는 고만고만하지만, 적의 숫자는 들쭉날쭉해서 심지어는 구성원 전체의 80% 정도의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도 있다. 한편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의 친구 수는 구성원 전체의 30% 정도를 넘지 않는다. 요즘 청소년 문제에서 ‘왕따’는 익숙한 단어지만, 왕따의 반대말은 언뜻 떠오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소수의 존재는 일반적인 사회관계의 네트워크에서도 폭넓게 관찰되는 보편적인 특징일지 모른다.

‘사랑’과 ‘미움’이 보여주는 행태가 다르다는 것은 시간에 따른 네트워크 구조의 변화에서도 볼 수 있다. 네트워크의 많은 연결선 중 어떤 연결선은 시간이 지나면 ‘친구’관계에서 ‘적’의 관계로 변할 수도, 또 그 반대도 가능하다. 또 없던 연결선이 새로 생겨 ‘친구’ 혹은 ‘적’의 관계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있던 연결선이 시간이 지나 없어질 수도 있다. 만약 두 사람을 잇는 연결선이 없다면 그 뜻은 둘 사이의 관계가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닌 ‘중립’적인 관계임을 의미한다. 3년의 기간 동안 연결선의 특성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해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볼 수 있었다.

‘친구’ 관계는 3년이 지나도 여전히 70%는 ‘친구’관계로 남아있는 데 비해, ‘적’ 관계는 3년이 지나면 50% 정도만이 유지된다. 즉 ‘친구’ 관계의 지속성이 ‘적’ 관계의 지속성보다 크다는 뜻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친구’가 ‘중립’으로 바뀔 수는 있지만(약 30%의 비율) ‘친구’가 ‘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1%보다 작은 비율)는 것이다.

‘적’ 관계는 이보다도 더 극단적이어서, 3년의 시간 동안 ‘적’ 관계가 ‘친구’ 관계로 바뀐 경우는 단 하나도 없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친구는 적이 될 수 있지만, 적을 친구로 만들기는 그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 세상사에서 유념할 만한 결과일 듯. 적을 애초에 만들지 말 것. 한 번 적이 되면 친구가 되기 어렵다.

연구에 사용된 자료를 이용해 더 생각해본 것이 있다. 만약 구성원들을 적절한 수의 그룹으로 나눈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배치하는 것이 조직 내의 갈등관계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본 것이다. 당연히 물리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도 정량적인 모형을 이용해 추구한다.(궁금한 독자를 위해 조금 더 적어보자. 필자와 공동연구자들은 이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는 문제를, 강자성-반자성 상호작용이 함께 있는 포츠(Potts) 모형의 바닥상태를 찾는 물리학 문제로 바꾸고, 이를 몬테-카를로 방법이라는 컴퓨터 시늉내기 기법을 이용해 풀었다.)

연구를 거의 마무리할 즈음, 상당히 흥미로운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기사에는 한 블로거가 재미삼아 만든 중동문제를 단순하게 표현한 네트워크가 소개되어 있었다.(기사 출처-www.washingtonpost.com/blogs/worldviews/wp/2013/08/26/the-middle-east-explained-in-one-sort-of-terrifying-chart/)

중동 국제관계에 대한 이 네트워크를 보면 필자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두 정치 세력 간의 관계가 방향성이 있는 좋고 싫음의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다. 위에서 소개한 필자가 사용한 방법과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필자의 공동연구자가 작성한 똑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중동 전체를 두 집단으로 나눠본 그림도 그려보았다. 필자가 찾은 두 집단이 국제정치의 입장에서 말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물리학자인 필자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래도 만약 해외언론에 소개된 블로거의 정치 세력 간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사실에서 많이 다르지 않다면 두 그룹으로 나누어본 필자의 결과도 어느 정도 의미는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한 정당의 정치인들이 서로 서로의 호감, 비호감 관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필자에게 준다면, 그 정당이 둘로 분당될 때 각 정치인들이 어느 쪽을 택할지에 대한 예측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한 필자의 연구에 사용된 구성원들 사이의 호감, 비호감 관계에 대한 설문 자료가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또 그 기관이 회사인지 공공기관인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자료에 있는 사람들은 임의로 부여된 숫자로만 구별되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리고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 아무런 정보도 애초에 없었다. 아니, 글을 읽은 눈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 수 있듯이, 사실 이런 개인정보가 없어도 얼마든지 흥미 있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때가 많다. 필자와 비슷한 연구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연구를 시작할 기본 자료의 부족으로 항상 목이 마르다. 요즘 빅데이터라는 말이 주목을 받으며 많은 정부기관 그리고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 없는 대량의 자료를 점점 더 공개하고 있다. 공유된 정보는 더 큰 가치를 갖는다. 어떤 정보를 어떻게 추출하고 이를 어떤 형태로 공유하는 것이, 빅브러더의 위험은 피하고 빅데이터의 이득은 취하는 현명한 방법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빨리 이뤄져 흥미 있는 연구의 기회가 더 열리기를 희망한다.

<문화일보 6월24일자 24면 ②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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